"악몽같은 시나리오"…글로벌 경제허브 비전 물거품 위기
이란·후티 대응옵션 전무…'최후보루' 미국 지원마저 불확실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이란 전쟁 발발 후 가장 큰 피해를 본 중동 국가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이 친이란 반군 후티, 이라크 민병대의 공격까지 받으며 속수무책 상태에 놓였다.
후티가 진격하며 사우디 핵심 해상 운송로인 홍해를 위협했고 이라크 민병대 소행으로 추정되는 세력이 주요 송유관을 공격했으며 이란은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방해하고 있지만, 대응 옵션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AP통신은 12일(현지시간) 현재 상황이 사우디에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라며 그들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진단했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이후 자국을 단순히 원유 수출국을 넘어서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10년 가까이 노력해왔다.
이는 석유산업이 몰락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존립 위기에서 벗어나 국가의 근본 체질을 첨단산업, 금융, 관광 등으로 재편해 중동과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겠다는 환골탈태 비전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6년 집대성한 이 같은 '비전 2030'에는 경제력과 기술력을 앞세운 실용주의적 다극외교를 통해 전쟁과 분쟁의 발원지인 중동의 구질서를 개선하겠다는 꿈까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중동 정세가 악화 일로를 걷으며 이런 노력은 점차 빛을 잃어갔다.
여기에 이란 전쟁까지 겹치며 사우디의 원유, 가스 수출길이 완전히 막히는 것 같았으나 홍해로 이어지는 송유관을 통해 원유를 수송하며 최악의 사태를 모면했다.
이 송유관을 이용하면 이집트 수메드 송유관과 수에즈 운하를 거쳐 원유를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었고,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인도양을 이용해 아시아로도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티 반군이 지난 10일 홍해 요충지인 모카를 장악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이에 더해 사우디는 11일 이라크발 드론 공격으로 동부 주요 유전에서 서부 홍해로 이어지는 송유관 가동도 중단했다.
문제는 상황 타개를 위해 사우디가 후티 반군 상대로 공격을 실행해도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우디는 지난 2015년부터 후티 반군과 수년간 교전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바 있다.
분쟁 감시 단체 ACLED에서 중동 연구 책임자로 일하는 셰르완 힌드린 알리는 "사우디는 과거에도 이런 상황을 겪었지만 후티 반군의 무기는 더 정교해졌고 미국과 이란 간 갈등 여파로 사우디가 보유한 요격 미사일은 더 줄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사우디가 후티 반군을 홍해에서 몰아내기 위해 군사적 대응 수위를 높이면 분쟁의 길어질 수 있고 후티 반군의 반격이 더 거세지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중동 내 가장 강력한 미 동맹국임에도 미국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또한 사우디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여러 국가는 수십년간 미국의 안보 보장에 의존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의 중동 안보 약속은 크게 약화한 전례가 있다. 지난 2019년 후티 반군 공격으로 사우디 원유 공급의 절반 이상이 중단됐으나 미국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때가 대표적 사례다.
AP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이란 전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예멘에서 또 다른 군사 작전을 개시할 경우 중간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 사우디 주재 미 대사 마이클 래트니는 미국의 지원 없이 사우디가 후티 반군을 물리칠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재 백악관은 개입을 별로 내켜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ki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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