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전 연계해 9·11 추모사…"오늘 우리가 싸우는 이유"
부시 "고립주의, 9·11 교훈 무시"…오바마·클린턴, 분열 대신 통합 촉구
美매체 "전직 대통령들은 9·11 유대감…트럼프는 달라진 對테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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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연합뉴스) 홍정규 특파원 = 미국 9·11 테러 25주년을 맞아 전·현직 대통령들의 행보가 또 엇갈렸다.
현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인근 국방부 청사(펜타곤)를, 전직 대통령 4명은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있던 '그라운드 제로'를 각각 방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오전 펜타곤에서 열린 25주년 추모식에서 "거대하고 끔찍한 악(惡)의 순간"이었다며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오늘 싸우는 이유"라고 9·11 테러를 현재의 이란전과 연계지어 연설했다.
펜타곤은 2001년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와 함께 알카에다가 납치한 민항기의 자살테러 공격을 받았던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펜타곤 추모식만 참석했으며, 테러 희생자가 가장 많고 상징적 장소인 그라운드 제로는 찾지 않았다.
테러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W. 부시(공화당 출신)를 비롯해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이상 민주당 출신) 등 전직 대통령 3명은 나란히 그라운드 제로 추모식에 참석했다.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 대신 JD 밴스 부통령이 모습을 보였다.
펜타곤만 찾고 그라운드 제로로는 향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역대 다른 대통령들과 대조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지적했다.
부시는 재임 시절 1주년과 5주년 행사 때, 오바마는 10주년 때, 바이든은 20주년 때 또 한 곳의 테러 현장인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납치된 민항기가 승객들의 저항 끝에 추락한 곳)을 포함해 3곳을 하루 동안 모두 방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11 시대 대통령들을 잇는 사적 유대 관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4명의 전직 대통령이 수년간 비공식 소통 채널을 유지하며 대테러 전쟁에 대해 서로 조언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성공한 뒤 부시 전 대통령에게 중앙정보국(CIA) 부국장 등을 보내 2시간 30분 넘게 작전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했던 것도 미국 안보에 대한 공동의 책임감과 분열된 국가를 하나로 이끌어야 한다는 유대감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앞서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댈러스에 있는 자신의 기념관에서 열린 9·11 25주년 대담에서 "우리 나라는 종종 고립주의 시기를 겪는데 이때의 태도는 '우리도 국내 문제가 많은데 해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 생각에 이것은 사람들이 9·11 교훈에 전혀 주목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며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의 국가 안보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도 겪고 있는 악몽을 지울 수는 없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고 분열보다 공통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모든 미국인이 9·11 테러의 진정한 교훈을 기억하기를 바란다"며 "우리가 하나의 나라, 하나의 국민으로서 앞으로 나아간다면 아무리 암울한 시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전·현직 대통령 중 유일한 '뉴요커'인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NYT는 그라운드 제로 행사가 정치인의 연설을 허용하지 않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자신을 과시하고 돋보이려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수많은 추모객 중 일부로 침묵을 지킨 채 앉아있다가 자리를 뜨는 행사가 내키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나는 (다른 곳에서) 연설을 충분히 많이 한다"며 관련 보도를 일축하며 자신이 2001년 당시 세계무역센터 현장을 찾았던 영상을 게시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추모식을 마치고 아일랜드로 출국하기 수월하도록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가까운 펜타곤만 찾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인 오는 12∼13일 본인 소유 둔베그 골프장에서 열리는 아이리시 오픈을 참관하기 위해 이날 아일랜드로 떠난다.
이같은 '추모의 행보'와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테러관이나 안보 위협에 대한 우선순위가 9·11을 전후해 재임했던 대통령들과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카리브해와 동태평양의 선박들을 격침하면서 '마약 카르텔'을 테러 위협으로 규정했다. 또 우익 극단주의는 외면한 채 좌익 극단주의를 테러 위협으로 지목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대테러 전략'은 마약 테러리스트와 초국가적 갱단, 기존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 그리고 무정부주의자와 반파시스트를 포함한 폭력적 좌익 극단주의자를 주요 위협으로 제시했다.
트럼프 행정부 '핵심 실세'로 꼽히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지난해 우파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의 암살 이후 "민주당은 정당이 아니다. 국내 극단주의 조직이다"라며 좌익 극단주의 혐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9·11은 미 본토가 동시다발 공격받는 사상 최악의 테러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인들이 외국발 테러에 무뎌진 측면도 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외국 테러리스트보다 서로를 더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이번 주 로이터·입소스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 중 외국발 테러를 가장 큰 위협으로 꼽은 응답자는 20%에 불과했다. 총기 난사 같은 무차별 폭력이 42%로 가장 많았고, 국내 테러가 33%로 뒤를 이었다.

zhe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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