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부자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라"
회고록 출간 앞두고 NYT와 인터뷰…'포퓰리스트가 자유주의 위기 부채질'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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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자유주의가 공산주의와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역사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1992년 출간된 그의 주저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간'에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유 시장의 순기능이 인간의 욕망을 흡수해 인간의 역사가 한차원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가령 당시 뉴욕의 부동산 거물 도널드 트럼프를 거명하며 후쿠야마 교수는 트럼프가 시장 경제를 갖춘 자유민주주의 내에서 자신의 '경제적' 야망을 충족할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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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8일 회고록 '마지막 인간의 영역에서'(In the Realm of the Last Man) 출간을 앞두고 진행한 뉴욕타임스와의 31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후쿠야마 교수는 30여년 전 트럼프 등에 관한 판단은 완전히 오판이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내 생각은 그들이 폭군이 되는 대신 엄청난 부자가 되는 길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저 부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그(트럼프)에게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당시 체제 안에서 부(富)를 축적하는 데 만족할 것으로 보았던 경제 엘리트의 야망이 정치적 권력욕과 결합해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단계까지 변할 줄 몰랐다는 얘기다.

이처럼 트럼프의 변신을 예상치 못했던 후쿠야마 교수의 지적 궤적 역시 사상적 굴곡의 연속이었다. 코넬대 재학 시절 앨런 블룸과 레오 스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아 보수 철학에 매료됐던 그는 파리로 건너가 롤랑 바르트의 세미나를 수강하며 프랑스 후기구조주의를 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이성적 담론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에 회의를 느꼈다. 이후 기존 고전학·비교문학 공부를 접고 하버드대에서 국제관계로 전공 방향을 틀면서 신보수주의(네오콘) 진영의 핵심 학자로 자리 잡았다.
그랬던 그가 2000년대 들어 또 한 차례 사상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이라크 전쟁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을 경험하며 자신이 믿었던 '자유주의' 체제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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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0년대 첫 10년 동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라크 침공으로 네오콘과 갈라섰고,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내 기존 신념들을 수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진흥을 위한 군사력 행사라는 신념은 이라크 전쟁을 낳았고, 시장의 자율성을 믿는 보수적 신념은 금융위기를 불렀다. 두 가지 모두 완전한 헛소리(Total bullshit)였음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후쿠야마 교수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집단보다는 개인에 중점을 두고, 헌법과 자유권에 기초한 보편적 인간 평등을 전제하며, 진리를 포착하기 위한 의사 표현의 자유와 과학적 합리주의 같은 것들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 같은 자유주의가 돈과 무력에 점차 포획돼 그 본질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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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 같은 포퓰리스트들의 등장도 자유주의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전작 '자유주의와 그 불만'에서 우파의 위기 요소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 등을 꼽았다.
이들이 선거로 얻은 권력을 법원과 사법체제, 비당파적 국가 관료제, 독립적인 언론,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행정 권력 등 자유주의 핵심 제도를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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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마 교수는 자유민주주의가 직면한 현재의 위기에 대해 인류가 일종의 '순환적 시스템'에 갇혀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라크전 이후 지속된 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해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가져다준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거치다가, 이에 지루함을 느끼고 스스로 체제를 파괴하려 드는 순환적 시스템에 갇혀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다만 "권위주의와 전쟁으로 우리 자신을 던져 넣었다가, 거기에 피로감을 느끼면 '아, 어쩌면 다시 자유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베를린 장벽 해체 이후 정립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정·正)가 현재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이라는 도전(반·反)을 맞아 흔들리고 있지만, 인류가 이 혼란에 피로감을 느낀 뒤 결국 다시 민주주의의 가치로 회귀(합·合)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분석인 셈이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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