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연합뉴스) 홍정규 특파원 = 주민(州民)들에게 미안한 말일 수 있지만, 미국 인디애나주는 약간 심심한 곳 같다. 유명 관광지나 화려한 대도시는 없고, 색다른 풍광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형마저 단조로운 평야다. 이 광활한 대지에 옥수수와 콩을 가득 심어 놨다. 'Hoosier'(촌뜨기)가 인디애나 주민의 별칭인 이유인 듯하기도 하다. 인디애나는 자동차·철강 산업이 발달했다가 쇠락해 오대호 인근의 '러스트 벨트'로 묶인다.
장점도 적지 않은데, 일단 물가가 싸다. 이란 전쟁 와중에도 휘발유를 갤런당 3달러에 파는 주유소를 봤다. 미국 평균 가격을 한참 밑돈다. 한국과 비슷한 면적에 660만명이 살아 주거비가 미국치고는 저렴하다. 날씨도 온화한 편이다. 또 공기가 맑고, 고즈넉하다. 자석 기념품의 대표 캐릭터는 젖소, 옥수수, 트랙터다. 시골 인심 가득한 목가적 분위기다.
지난 4월 인디애나 남부의 한 시골 마을 웨스트라피엣의 적막이 오랜만에 깨졌다. SK하이닉스가 이곳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6∼27일(현지시간) 공장 기공식 참석차 방문했을 때 김현중 현장 건설팀장을 만났다. 김 팀장은 미국 건설 현장은 한국만큼 까다로운 규제는 없지만, 공사장 주변 거주민들이 겪을 불편을 고려해 소음과 먼지 발생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현장을 소음방지벽으로 둘러치고 흙바닥을 아스팔트로 덮었다.
그렇지만 소음·먼지가 없을 수는 없을 터. 기공식에서 만난 인근 주민에게 어떤지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소음도 먼지도 환영합니다. 얼마나 고마운데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더니 같은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일자리가 생기잖아요"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장 건설로 그 지역에 약 7천명의 고용 효과가 기대된다고 홍보했다. 완공된 공장에선 1천명가량 근무하게 된다. 건설 현장에서 약 3년 동안 3천명이 일한다. 또 공장 건설에 따라 협력업체 등에 3천명가량 간접 고용 효과를 예상했다. 그래서 다 합쳐 7천명이라는 것이다. 뜯어보면 조금 과장됐다고 느낄 수도 있는 숫자지만, 아무렴 어떤가. 지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력하다. 웨스트라피엣 인구는 약 4만5천명이다. 도시 인구 6명 중 1명꼴로 새 일자리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공장에 부지를 제공한 퍼듀대학교 학생들이 가장 직접적인 혜택을 본다.

지역 정치인들이 기공식에 앞다퉈 참석해 '7천명' 홍보에 열을 올렸다. SK하이닉스는 '첫 미국 내 메모리칩 생산'이라는 측면을 더 강조했다면, 정치인들은 일자리에 더 주목했다. 마이크 브런 주지사는 "7천개 넘는 직·간접 일자리가 이 주에 생긴다"며 "'Hoosiers'(인디애나 주민들)에 즉각적인 경제적 효과와 혜택"이라고 말했다. 토드 영 상원의원은 공장 건설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또 한 걸음"이라면서 "엔지니어와 기술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재료과학자, 첨단 제조 전문가, 건설 노동자" 등의 일자리 창출을 열거했다. 시종일관 일자리(job, career) 얘기였다.
정치인만큼 민심에 민감한 사람은 없다. 이들이 일자리 창출 효과에 입을 모은 이유는 자명하다. 주민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은 시골 마을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바로 이런 기대감에 본능적으로 부응한 정치인이다. 그의 관세·반(反)이민 공약에 담긴 핵심 메시지는 일자리였다. 결과적으로 전세계를 혼란에 몰아넣었고,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내 일자리를 얻거나(관세) 잃지 않을 것(반이민)이라는 기대감을 그는 표로 흡수했다.
웨스트라피엣 기공식 현장의 분위기는 축제처럼 들떠 있었다. 이곳이 미국이 아니라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이었을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zhe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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