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VERTISEMENT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지난 10일(현지시각)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 도버에 도착한 길이 15m 고무보트에는 무려 230명이 타고 있었다. 어린아이도 있었다. 2018년만 해도 1척당 평균 탑승자는 7명에 불과했으나 어느새 62명으로 불었고, 이제는 100명을 훌쩍 넘기는 사례까지 나왔다. 지중해에선 북아프리카에서 스페인·이탈리아로, 미국 남부 국경에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 루트가 이어진다. 목적지는 달라도 돈을 받고 국경을 넘겨주는 '검은 장사'가 곳곳에서 성행 중이다.
과거에도 밀입국 브로커는 있었다. 미국-멕시코 국경의 '코요테(coyote)'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경 지리를 꿰고 사람을 몰래 넘겨주던 밀입국 자영업자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모집책과 브로커, 위조서류 업자, 보트·차량 조달책, 운전기사와 은신처 운영자, 자금세탁책으로 역할이 쪼개졌다. 소셜미디어(SNS)는 광고판으로,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는 연락망으로, 암호화폐는 결제 시스템으로 각각 활용된다. 미국에선 국경을 넘은 사람을 '스태시 하우스(stash house·이주민 은닉처)'에 숨겼다가 각지로 실어 나른다. 유럽에선 고무보트와 엔진을 조달하는 공급망까지 생겼다.
ADVERTISEMENT
밀입국도 시장이다. 가격도 형성돼 있다. 영불해협을 건너는 데 1인당 1천∼2천 유로를 받는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밀입국은 1인당 최대 2만 유로에 이른다. 유로폴은 밀입국 조직이 보트 1척으로 최대 10만 유로(약 1억6천만원)를 벌 수 있다고 추산한다. 전쟁과 정치적 박해, 빈곤과 실업은 사람을 국경 밖으로 밀어낸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들어갈 문은 좁다. 이 간극을 밀입국 브로커가 파고든다. 단속이 강화되면 밀입국 조직은 수법을 바꾼다. 해변을 막자 바다를 돌며 사람을 태우는 '택시 보트'가 나왔고, 출항 기회가 줄자 한 번에 더 많이 태우는 '메가 보트'가 등장했다. 수익은 조직이 챙기고 위험은 이주민에게 전가된다. 장벽이 높아질수록 밀입국 비용도 뛴다. 밀입국 문제는 국경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여파는 정치권까지 번졌다. 유럽에선 프랑스 국민연합(RN), 독일대안당(AfD), 영국개혁당 등 강경 우파가 세력을 넓히는 요인이 됐다. 중도 진영도 여론 압박에 국경 심사와 송환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유럽연합(EU)은 지난 6월 새로운 이민·망명 협정을 본격 시행해 국경 심사와 신속한 망명·송환 절차를 강화했다. 미국은 더 강경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통제와 대규모 추방을 2기 행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밀어붙였다. 최근엔 비자와 출생시민권 문제까지 전선을 넓혔다. 국경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인식은 강경한 이민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연료다.
유로폴은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유럽 이주민 밀입국 대응센터(ECAMS)'를 출범시켰다. 국경에서 이주민 몇 명을 붙잡는 데 그치지 않고 밀입국 조직책, 운송망, 자금줄을 통째로 추적하겠다는 것이다. 국경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그러나 사람만 막고, 사람을 넘겨 돈을 버는 조직을 놔두면 불법 밀입국 비즈니스는 계속된다. 15m 고무보트에 230명을 태운 이들에게 이주민은 그저 매출일 뿐이다. 이주민의 절박함에 가격표를 붙이는 장사, 그것이 불법 밀입국 비즈니스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