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중앙정치 복귀…'유일한 우익 대항마' 자처
지역 경제 발전 중시 '맨체스터리즘' 앞세운 당내 온건 좌파
코로나 대응 등 행정능력 인정…국정 구상 부족하다 지적도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22일(현지시간) 키어 스타머(63) 영국 총리의 사임으로 앤디 버넘(56) 하원 의원이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실 입성에 한층 가까워졌다.
지난 18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버넘 의원은 이날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의회에서 정식 취임 선서를 하고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유력한 차기 총리 및 집권 노동당 대표 주자로 꼽히는 버넘 의원은 스타머 총리의 사임 발표 직후 엑스(X·옛 트위터)에 "키어의 결정은 이행의 시작이며 이 과정은 질서와 책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며 "나는 그 과정의 일부로 나 자신을 내세우겠다"고 썼다.
버넘 의원은 "정치 변화가 국민의 삶 개선에 대한 책무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노동당은 자신감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앞을 내다볼 때 가장 강했고 이게 우리가 할 일"이라며 "우리는 반드시 이번 이행이 당과 나라에 긍정적 쇄신 과정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타머 총리는 7월 9∼16일 당 전국집행위원회(NEC)를 통해 대표 후보를 지명하고 9월 1일 의회 개회 이전에 차기 대표를 확정하는 차기 대표 선출 일정을 제시했다.
버넘 의원의 당내 지지가 높은 만큼 경쟁자 없이 홀로 충분한 수의 의원 지지를 확보하면 경선을 치르지 않고 대표 선출이 가능하다. 2007년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사의 표명 후 고든 브라운이 경선 없이 대표로 추대돼 총리직에 올랐다.

버넘 의원은 이날 조기 총선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에게 "허들 몇 개는 뛰어넘은 얘기"라며 선을 그었다. 영국에서 총선은 2029년 여름 치러지면 되지만, 지지율 1위 우익 영국개혁당은 당장 총선을 하라고 노동당에 요구했다.
버넘 의원은 리버풀 교외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15세 나이에 노동당에 가입했다. 케임브리지대 졸업 후 의원 보좌관 등을 지냈고 2001년 31세 나이로 하원에 처음 입성했다.
이후 17년간 하원의원을 지내는 동안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문화부·보건부 장관과 재무부 수석 부장관, 내무부·보건부 차관을 역임했다.
노동당의 실각 이후 제1야당 시절엔 예비내각 보건, 교육, 내무장관 등을 맡았다. 2010년과 2015년 당 대표 경선에 도전했으나 각각 에드 밀리밴드, 제러미 코빈에게 밀렸다.
2017년 지방 선거에서 63.4% 득표율로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 취임한 그는 지역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코로나19 사태 대응 등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2021년 67.3%, 2024년 63.4%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지역에서 높은 인지도와 인기로 '북부의 왕'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는 팬데믹 당시 보리스 존슨 정부가 본인의 요구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봉쇄 보상안을 제안하자 중앙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거부해 지역 이익을 대변한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버넘 의원은 '기업 친화적 사회주의'라는 경제 모델을 주장하는 중도좌파 노동당 내 온건 좌파로 꼽힌다.
주택과 공공 인프라, 교통, 교육 등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권한을 지역에 맡겨 각 지역에 맞는 경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맨체스터리즘'(Manchesterism)을 설파했다.

기존 재정 규칙 준수를 약속했고, 세금 부문에선 근로자 소득세와 국민보험료, 부가가치세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한 2024년 노동당 총선 공약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현 내각의 이민 문턱 높이기 기조에 반대하지 않고, 복지에선 사회적 돌봄 부문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유럽연합(EU) 재가입 논란에는 현재로선 이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일축했다.
9년간 중앙 정치에서 벗어나 있던 버넘 의원은 이제 웨스트민스터 재입성과 동시에 총리 후보로서 정치적 역량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동당이 우익 영국개혁당에 크게 밀리고 중도 자유민주당, 좌파 녹색당에도 유권자들을 빼앗기는 상황에서, 버넘 의원은 카리스마와 비전을 가지고 영국개혁당에 맞서 유권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노동당 인사는 본인뿐이라고 역설해 왔다.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맨체스터 일대에서 영국개혁당이 노동당 지지율을 크게 앞지른 것으로 평가됐으나 55%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러나 노동당 정권이 국정 쇄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 속에 지지율이 급락한 터라 차기 총리는 여전히 제약이 많은 재정·경제적 난국 속에 당과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버넘 의원이 이와 관련해 상세한 국정 운영 방향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미 나오고 있다.
지난달 노동당의 지방선거 참패 직후 스타머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며 내각에서 이탈하고 당 대표 경선 출마 의향을 밝혔던 웨스 스트리팅 전 보건장관은 이날 버넘 지지 의사를 밝혔다.
스트리팅 전 장관은 엑스에 게시한 서한에서 "최근 며칠간 앤디와 길게 대화한 끝에 그가 우리 정치적 이행에 최선이 될 포용적 정당을 구축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는 확신이 섰다"고 적었다.
잠재적 차기 총리 경쟁자로 거론돼온 앤절라 레이너 전 부총리나 이베트 쿠퍼 외무장관, 존 힐리 전 국방장관 등은 경선 도전 의향을 언급한 적이 없다.
또 다른 잠재적 경쟁자로 꼽혔던 에드 밀리밴드 에너지안보 장관의 경우 버넘 의원이 총리가 되면 밀리밴드 장관에게 재무장관을 맡길 것이란 관측이 나왔으나 버넘 측은 개별 장관직을 놓고 개별 접촉은 없었다며 부인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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