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84.7% "몰입 방해 규제 존재"
과기정통부, R&D 현장규제 합리화 방안 논의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연구비 입금이 11월에 됐는데 1년 차라고 12월에 기계적으로 보고서를 쓰라고 한다. 평가받는 건 아니니 서류상으로 쓰라고 하는데 이전에 있던 걸 끌어 쓰고 하는 부조리가 생긴다."(최무림 서울대 교수)
"인공지능(AI)이나 소프트웨어 연결제가 월 단위 결제보다 싼데도 협약 기간에 맞지 않으면 그냥 비싼 돈을 내야 한다. 다 세금이고 국가 연구개발(R&D)에 써야 할 돈인데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윤기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
15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에서 열린 'R&D 규제 합리화를 위한 연구자 간담회'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연구 현장에 여전히 남은 각종 규제 때문에 연구자가 죄인처럼 여겨지는 상황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최 교수는 "최근에는 1년 차가 0.5년, 0.25년 과제가 많은데 1년차는 보고서를 없애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한다"며 "연구자들이 연구비 삭감보다 힘들어하는 건 연구자로서 '현타'가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은 대학 산학협력단이나 과제 협약에서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유를 소명하고 서류를 쓰는 데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고 연구자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로 국내 연구자 대다수는 여전히 연구전념에 방해되는 규제가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기정통부가 이날 공개한 연구자 1천148명 대상 R&D 현장규제 합리화를 위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구자 중 84.7%가 연구전념에 방해되는 규제가 있다고 답했다.
결과에 따르면 연구소 소속, 40~50대 중견 연구자일수록 규제가 있다는 응답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전념에 가장 방해가 되는 규제로는 예산집행 및 정산단계 규제를 가장 많이 꼽았고, 과제관리와 기획·선정평가 단계가 뒤를 이었다.

김현유 충남대 교수는 "다른 연구실에서는 위험한 약품을 다뤄 학생 실험복 세탁이 필요한데, 세탁기 구매를 산단에 납득시키는 데 오랜 기간이 걸렸다"며 "연구자를 준 범죄자처럼 보는 경향이 있는데 가급적 열어주는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최근 이직이 잦은 교수들이 과제나 연구장비를 제때 이관하지 못해 연구가 끊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올해 초 대학을 옮긴 정다흰 중앙대 교수는 "우수신진 과제를 이관하면서 보니 생각보다 협약 변경에 대한 서류화가 너무 없다"며 두 달 넘게 아직 과제가 넘어오지 않아 인건비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임미경 중앙대 교수도 "개인 기초를 옮기는 데만 5개월이 걸렸고 집단과제는 더 오래 걸렸다"며 "이관할 때마다 죄인이라는 느낌으로 접근하는데, 매뉴얼이 있다면 여러 사람이 편할 것 같다"고 했다.
인공지능(AI) 연구자인 정 교수는 지난해 우수신진 과제를 통해 구매한 그래픽처리장치(GPU)의 경우도 전 대학에 두고 와야 했다며 "양쪽의 의견은 이해하지만, 연속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구혁채 과기정통부 1차관은 "상식적으로 봤을 땐 장비는 이관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며 관련 제도를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범부처통합연구지원시스템(IRIS)과 대학 내부 시스템 간 연계 문제, 수의계약이 필요한 장비도 입찰해야 하는 문제 등도 제기됐다.
구 차관은 "제시된 '낡은 모래주머니'를 소소한 것일지라도 가능한 것부터 확실히 걷어내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구 차관은 간담회에 앞서 AI 기반 핵융합 제어 연구를 진행 중인 서재민 중앙대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해 연구 내용을 살펴보기도 했다.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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