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사, 폴란드 하원의장에 '전세계 세몰이' 압박했다 퇴짜
설전 속 반미정서 자극…동맹경시 기조 맞물려 관계 살얼음판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미국과 폴란드 간 관계가 급격히 경색할 조짐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욕심을 둘러싸고 미국과 폴란드 정치권에서 갈등이 촉발했고, 정치권을 넘어 국민 여론까지 악화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브워지미에시 차자스티 폴란드 하원의장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전세계 의원들의 지지를 모으는 데 앞장서달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요청을 받았다.
차자스티 의장은 이를 거부하며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국제 정치의 불안정 요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단언했다.
차자스티 의장의 발언에 대해 미국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토마스 로즈 주폴란드 미국 대사는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차자스티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터무니없고 도발적인 모욕을 가했다"며 "브워지미에시 차자스티 폴란드 하원의장과 더 이상 어떠한 거래나 접촉, 소통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러자 이번엔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나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투스크 총리는 엑스를 통해 로즈 대사에게 "동맹국은 서로를 존중해야지 훈계해선 안 된다"며 "적어도 폴란드에서는 그것이 파트너십을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로즈 대사는 투스크 총리를 향해 "메시지가 실수로 나에게 전달된 것 같다. 메시지를 차자스티 의장에게 보내려 했을 것 같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은 폴란드 지도자가 해선 안 될 최악의 행동"이라고 맞섰다.
양국 정치인들 간 이 같은 설전이 오가면서 폴란드인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도 악화하는 모양새다.
WSJ은 폴란드인들이 이미 미국은 나토가 필요하지 않다거나 나토 동맹국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분노했으며 이번 사태가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관측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폴란드인 70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백명이 다쳤다.
최근 폴란드 내 여론 조사에 따르면 폴란드인 중 미국을 지지한다는 비율은 49%로 나타났는데, 이는 과거 미국에 대한 지지율이 70∼80%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낮아진 것이라고 WSJ은 전했다.

폴란드 야권 우파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로만 기에르티흐 하원의원은 엑스를 통해 차자스티 의원에 정치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를 지지하겠다면서 "우리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원하지만, 그 대사가 폴란드의 권력자를 우리 대신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의 전 특수부대 사령관인 로만 폴코는 폴란드 내 여론 악화에 대해 "소련의 지배를 받은 우리는 서방으로 대피해 그 가치 체계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며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소련의 지배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폴란드는 냉전 종식 이후 자국을 미국의 가장 충실한 동맹국으로 생각해왔다.
폴란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발맞춰 국방비를 늘려왔으며, 현재 나토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율이 약 5%로 최고 수준이다.
아울러 세계 최대 미국 무기 구매국 중 한 곳이자 동유럽 국가 중 최대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WSJ은 이번 갈등이 양국 간 관계 단절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적인 이유로 미국의 외교 정책에 개입하고, 그가 다른 나토 회원국들에 대해 보인 적대감이 가장 가까운 동맹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에 실패한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노벨평화상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자신이 "8개의 전쟁을 멈췄다"면서 자신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그러나 결국 작년 노벨평화상은 베네수엘라의 야권 지도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게 돌아갔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대한 악감정을 노르웨이에 표출하며 '뒤끝'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18일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내가 8개 이상의 전쟁을 중단시켰는데도 귀국이 나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나는 더 이상 순수하게 '평화'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같은 달 15일에는 마차도가 노벨평화상 진품 메달을 헌납하자 이를 받으며 "상호 존중의 훌륭한 제스처"라고 치켜세웠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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