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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⑹세네갈 시인 대통령 상고르…佛과 대립보다 공존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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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⑹세네갈 시인 대통령 상고르…佛과 대립보다 공존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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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인물열전] ⑹세네갈 시인 대통령 상고르…佛과 대립보다 공존 모색
    아프리카 문화 독창성 시로 노래, 세네갈 국가도 작사…별세 때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애도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 "시는 거장 한 명을 잃었고, 세네갈은 큰 정치인을, 아프리카는 선구자를, 프랑스는 친구를 각각 잃었다."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1906∼2001) 전 세네갈 대통령이 2001년 별세하자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이같이 애도했다.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상고르의 인생은 상반되거나 이질적인 것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균형 잡기의 연속이었다.
    그는 아프리카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지칭하는 '네그리튀드'(negritude)'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노래한 뛰어난 시인이면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정치에서도 최고 지도자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뿐 아니라 식민국이었던 프랑스와 자신의 모국인 세네갈, 가톨릭과 이슬람교 등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화와 화해를 모색했다.
    상고르는 1906년 프랑스령이었던 현 세네갈 조알에서 소수 종족 세레르족의 부유한 땅콩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22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대학을 졸업하고 1935년부터 1948년까지 프랑스에서 불어 교수를 지냈다.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프랑스 군인으로 자원입대해 싸우던 중 독일군에 붙잡혀 포로수용소에서 2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상고르는 아프리카에서 파리로 유학 온 지식인들과 함께 네그리튀드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었다. 이 단어는 당시 프랑스에 널리 퍼져 있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반발하며 아프리카 문화를 찬양하는 긍정적인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인으로 프랑스 주류 사회에 편입했던 경험 때문인지 상고르는 1950년대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려 할 때 프랑스 제국 내에서 아프리카 통합을 주장하는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민족 국가로 개별적으로 독립하는 것보다 '프랑스 연방' 체계에서 아프리카가 더 성공적으로 발전하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는 그의 이런 생각과 달리 독립을 선택했다.
    상고르는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소수 종족 출신의 가톨릭교도로서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이고 월로프족인 세네갈을 20년간 이끌었다.
    상고르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아프리카 국가에서 독립 후 유행했던 마르크스주의 및 반서구 이데올로기와 거리를 둔 채 프랑스 등 서방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재임 기간 프랑스 통화에 고정된 서아프리카 지역 공용화폐 세파프랑(CFA)을 도입한 것에 더해 학교에서 프랑스어 교육 등 프랑스 식민잔재 청산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네갈 민주주의에 남긴 영향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재임 20년 만인 1980년 자발적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세네갈에서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쿠데타 등이 없는 평화적인 정권 교체 문화가 정착했다.

    세네갈 대통령실은 홈페이지에서 "상고르 재임 기간에 세네갈은 복수정당제와 교육제도를 정비했다"고 그의 치적을 평가했다.
    문학 분야에서도 그는 업적을 인정받아 1983년 아프리카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학술원(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혔다.
    세네갈 국가인 '붉은 사자'도 그가 작사한 것이다.
    1962년 한국과 세네갈 수교 이후 상고르는 1979년 한국을 방문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만났다.
    상고르의 90번째 생일에 맞춰 1996년 세네갈 수도 다카르의 공항은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국제공항'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2001년 프랑스 노르망디 베르송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sungjin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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