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관세는 수출, 수입하는 화물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관세의 납세의무자는 수입자다. 현재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처럼 수입하는 물품에 관세를 물린다면 일반적으로 이는 미국의 수입자가 낸다. 하지만 그 부담이 결국 누구에게로 전가되는지는 시장 상황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수입자가 판매 가격을 인상하면 수입산보다 저렴한 자국산의 수요를 늘리게 돼 결과적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관세 부담은 소비자에 전가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경우엔 공급자(수출자)가 부담을 떠안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시작한 초기부터 금융시장이나 학계에선 관세가 수입 물가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와 경고가 많았다. 그리고 그 우려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내리지 않고 동결하고 있는 이유도 관세부과로 인한 불확실성과 물가 영향 때문이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지난달까지 미국의 물가는 관세의 영향이 크게 반영되지 않고 예상했던 수준에 머물며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같은 달보다 2.7% 올라 예상치와 비슷했다. 상승률도 6월(2.7%)과 같다. 우려했던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니 시장에선 금리인하 기대가 커졌다.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 9월 기준금리 0.25%포인트(p) 인하 가능성은 94%를 넘어섰다. 시장에선 0.25%p가 아니라 0.5%p를 내리는 '빅컷'(Big Cut) 가능성도 내다보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노골적으로 연준에 0.5%포인트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라자합의를 본뜬 '마러라고 합의' 보고서를 만든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장을 연준의 새 이사로 지명했고, 내년 5월 물러날 파월 연준의장의 후임에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비둘기파' 인사를 지명하려 하고 있다. 이런 행보는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혹독하게 연준을 압박하며 요구했던 금리 인하를 노린 조치들이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로 경기를 부양하고 막대한 국채이자 부담도 줄이는 한편 달러가치 절하로 수출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등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하와 약달러를 향해 가고 있다. 아직은 1985년 플라자합의나 마러라고 합의처럼 인위적인 조정 없이도 달러 약세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앞으로 관세 부과로 미국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면 또 어떤 압박 수단을 들고나올지 모를 일이다. 환율은 어느 방향이건 장단점이 있지만 우리 수출기업 입장에서 달러 약세는 관세에 가중되는 이중 부담이다. 무역협회는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수출액이 0.25%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달러 약세 시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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