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우파의 시간' 온다…경제난·이주민에 진보정치 위축
WSJ 추세 진단…미국 이어 유럽 주요국들에 연쇄 변화 예고
"시민들 여유 잃었다"…노동계층 불안·진보의제 피로감 등 복합영향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진보의 시간은 끝났다. 적어도 지금은"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 복귀를 앞두고 있고 유럽 각국에서도 우파 정당이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을 들어 산업화를 이룬 국가에서 두드러지는 지구촌 추세를 이처럼 진단했다.
지난 20여년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득세했던 진보 정치가 힘을 잃고 보수 우파, 특히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WSJ은 그 이유로 경제난과 이민 증가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불안감과 기후변화, 정체성 문제와 같은 주요 진보 이슈에 대한 피로감을 꼽았다.
정치분석가들은 낮은 경제성장률과 이민자 증가가 진보 정권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민족주의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평생 민주당 당원이었지만 현재는 중도 우파 성향의 싱크탱크 미국 기업연구소에서 일하는 루이 테이세이라 연구원은 "노동자 계급은 이민과 문화 전쟁,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제적 성과에 대해 화가 났다"고 말했다.
현실의 벽에 부닥친 서구권 유권자들은 기후 변화나 사회 정의, 정체성 문제와 같은 중도 좌파 이슈에 관해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어졌다.
우르줄라 뮌히 독일 투칭 정치교육아카데미 소장은 "서구 사람들은 어떤 섬이 바다에 가라앉을지보다 자신의 일자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WSJ은 특히 과거에도 좌파와 우파가 번갈아 가며 집권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엘리트층에 대한 거부감으로 반기득권 정당이 힘을 얻고 있다고 짚었다.
이런 추세는 실제로 각국에서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재집권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기득권 정당인 공화당 소속이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우파로 보기는 어렵다.
캐나다에서는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정책 연합을 맺었던 신민주당(NDP)이 불신임안 제출을 예고하면서 총리직을 내놔야 할 위기에 처해있다.
조기 총선을 치른다 해도 높은 인플레이션과 주택 비용 상승, 개방적인 이민 정책에 분노한 표심으로 여론조사에서도 보수당에 큰 차이로 뒤지고 있는 만큼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심지어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트뤼도 총리보다 트럼프 당선인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보인 캐나다인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수년간 실질 임금 정체와 이민자 증가를 겪은 유럽의 유권자들은 더 회의적으로 변했다.
유럽연합(EU)의 4분의 3은 중도 우파 정당이 이끌고 있거나 적어도 우파 정당이 한 개는 포함된 연립 정부가 집권한 상황이다.
지난 6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극우 정당인 프랑스 국민연합(RN)이나 독일대안당(AfD), 이탈리아형제들(Fdl)이 크게 도약했다.
내년 2월 조기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도 불법 이민 차단을 앞세운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극우 독일대안당(AfD)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다.
영국의 경우 겉보기에는 보수당 대신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다른 유럽권 국가와는 반대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런던정경대의 정치학자 토니 트래버스는 14년간 보수당이 집권해온 데 대한 거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집권 6개월 차인 키어 스타머 총리의 인기도 크게 하락한 상황으로 집권당에 대한 거부감은 다른 유럽 국가와 같다는 것이다.
그는 취약한 경제와 기록적인 이주민 증가가 포퓰리스트들에게 "기성 정당은 모두 실망만 시켰고, 오직 우리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뒤셀도르프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의 슈테판 마르샬 정치학 교수는 "극우 정당은 엘리트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통해 굳건히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e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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