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여객기 비상구 강제로 열면 중형 받는다?
항공보안법에 따라 비상구 강제 개방시 '엄벌'
비상구 좌석 탑승 조건 강화…경찰·군인에 우선 배려
일부 여객기 비상구 강제 개방 가능…방지책 강화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지난달 국내 공항에서 출발을 준비 중이던 여객기 내에서 한 승객이 비상구를 강제로 열어 이륙이 지연되는 등 최근 들어 여객기 비상구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관련 보도의 댓글에는 "승객이 비상구를 여는 것은 고의적이기 때문에 엄벌에 처해야 한다", "이륙했는데 승객이 비상구 열면 모든 승객이 위험에 처하므로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등 여객기 사고 위험성에 대한 우려로 가득했다.
그렇다면 승객이 임의로 여객기 내의 비상구를 강제로 열 경우 중형에 처하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승객이 여객기 내의 비상구를 함부로 여는 행위는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로 엄중히 처벌받게 된다. 동승한 승객이 다치는 등 심각한 사안으로 번질 경우 징역 10년 이상까지 가중 처벌될 수 있으며 항공사로부터 수억 원의 손해배상 요구와 함께 탑승한 피해 승객들로부터 정신적·신체적 피해에 대한 소송도 당할 수 있다.
◇ 항공보안법 엄격…비상구 강제 개방시 '엄벌'
대규모 인원이 밀폐된 공간에서 함께 이용하는 여객기의 특성상 항공 보안법은 엄격하다. 항공 보안법은 국제민간항공협약 등 국제협약에 따라 공항시설, 항행 안전시설, 항공기 내에서 불법 행위를 방지하고 민간 항공의 보안을 확보하기 위한 기준·절차 및 의무 사항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승객이 여객기 비상구를 강제로 개방하면 처벌이 상당히 엄할 수밖에 없다.
항공 보안법 제23조(승객의 협조의무) 제2항에는 '승객은 항공기 내에서 다른 사람을 폭행하거나 항공기의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폭행·협박·위계 행위 또는 출입문·탈출구·기기의 조작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돼있다. 제4항에는 '항공기 내 승객은 항공기의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기장 등의 정당한 직무상 지시에 따라 한다'고 돼 있다.
제46조(항공기 내 폭행죄 등) 제1항에는 '항공 보안법 23조 제2항을 위반해 항공기의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폭행·협박·위계행위 또는 출입문·탈출구·기기의 조작을 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제23조 제2항을 어겨 항공기 내에서 다른 사람을 폭행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까지 추가돼있다.
형법상 범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 형법 제366조(재물손괴 등)에는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 또는 은닉 기타 방법으로 효용을 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형법 제38조(경합법과 처벌례)에 의해 징역 10년 이상까지 가중 처벌될 수 있다.
형법 제38조 제1항에는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 외의 같은 종류의 형인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해 정한 형의 장기 또는 큰 액수에 2분의 1까지 가중하게 된다.
구체적인 형량은 여객기 비상구를 강제로 연 승객의 질환 이력이나 승객들이 입은 신체적·정신적 피해 정도, 피해 보상을 위한 노력, 범죄 이력 등이 고려된다.
문제는 형사 처벌만 받는 게 아니다.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한 승객이 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의 비상문을 연 사건과 관련해 해당 항공기의 수리비를 약 6억4천만원으로 산정했다. 여객기의 비상문과 슬라이드 등 3개 부위가 손상돼 피해액이 이같이 추산됐다.
해외의 경우도 승객이 여객기 비상구를 강제로 열었을 경우 중형에 처한다.
중국은 승객이 여객기 비상구를 강제 개방 시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에 벌금 및 항공사의 손해배상까지 가능하다. 심각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도 처할 수 있다. 미국은 연방 항공법에 따라 중대한 항공법 위반으로 간주해 최대 25만 달러(한화 3억5천여만원)의 벌금과 20년 이하의 징역이 부과될 수 있다. 민사 처벌로도 최대 3만7천 달러(5천200여만원)까지 벌금이 가능하며 항공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받을 수도 있다.
유럽연합(EU)은 국가별로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2~5년 징역형 및 최대 수만 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일부 EU 회원국은 항공기 내 위법 행위를 테러로 간주해 엄히 처벌하는 추세다. 일본은 항공법에 따라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470여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고 항공사의 손해배상도 별도 청구된다.
◇ 비상구 좌석 탑승 조건 강화…경찰·군인에 우선 배려
여객기의 비상구 좌석은 유사시 특별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이 좌석에 앉으려면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항공 등의 비상구 좌석 탑승 규정에 따르면 신체 및 지적 능력, 의사소통 능력, 적절한 연령과 책임감 등이 필요하다.
우선 유사시 비상구를 열 수 있는 신체적 체력과 기내 지침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이 필요하다. 대한항공의 경우 한국어 또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승객을 요구한다. 신체가 건강한 15세 이상, 보호해야 하는 유아를 동반하지 않을 경우 가능하다.
지난해 5월 아시아나 여객기의 비상구 강제 개방과 제주항공 여객기의 비상구 개방 사고 등이 연이어 발생하자 우리나라에서는 비상구 탑승 규정이 강화됐다.
'비상구 좌석 우선 판매'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여객기의 비상문 인접 좌석을 기내 안전 강화를 위해 소방관, 경찰관, 군인, 항공사 승무원에게 우선 양보하는 제도다. 비상구는 승무원 좌석과 거리가 떨어져 있어 비상 상황 시 승무원이 빠르게 대처하기 어려운 자리이기 때문이다.
여객기 출발시간 1시 30분 전까지 발권 카운터에서 소방관 등의 신분이 확인될 경우 비상구 탑승권을 받을 수 있으며 이후에는 필요한 조건을 갖춘 일반 승객에게 해당 좌석을 판매한다.
이런 제도까지 도입한 것은 승객의 비상구 강제 개방 사고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2월에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베트남으로 떠나려던 여객기 안에서 60대 여성이 비상구 레버를 잡아당겨 비상구가 열리고 비상 탈출용 슬라이드까지 펼쳐지는 바람에 2시간 넘게 이륙이 지연됐다.
2019년 9월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던 여객기에서 비상구 좌석 승객이 비상문을 열려고 시도해 회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5월 제주에서 대구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서는 한 승객이 착륙 2분 전 비상구를 불법으로 개방한 적이 있고 그해 6월에는 세부에서 인천으로 오던 제주항공에서 한 승객이 비상구 문을 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 11월에는 광주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여객기 내에서 한 승객이 비상구를 강제로 여는 사고도 발생했다.
같은 달에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는 여객기에서 한 외국인 승객이 비상구 근처 승무원 전용 좌석에 무단으로 착석한 뒤 비상구 방향으로 접근하는 등 기내 난동을 부린 사고도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상구 강제 개방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8월 시드니에서 출발해 멜버른에 도착한 여객기에 탑승 중이던 한 남성이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비상구로 돌진해 문을 강제로 열고 비상구로 빠져나와 날개 위로 올라간 뒤 엔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는 사고가 있었다.
2016년 4월에는 중국의 한 공항에서 이륙 채비를 하던 여객기의 비상구를 한 승객이 강제로 열면서 공안이 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 일부 여객기 비상구 강제 개방 가능…방지책 강화
이처럼 승객의 비상구 강제 개방을 승무원들이 적시에 제지하지 못하는 것은 대응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상구는 위급 상황 시 승객의 신속한 탈출을 돕기 위해 덮개를 열고 레버만 당기면 바로 열릴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여객기 주변의 대기압은 이륙 후 상승할 때마다 줄어들어 3만 피트(9km) 상공에서는 지상의 26% 수준으로 낮아진다. 하지만 객실 내에서는 기압을 유지해주는 여압 시스템 덕분에 승객은 기압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지상과 별 차이 없이 기압을 유지하는 항공기 내부와 고도 상승으로 기압이 낮아진 항공기 외부의 대기압 차이로 인해 1만2천m의 순항 고도에서는 항공기 내부 표면의 단위 면적당 가해지는 압력이 4.5kg에 달하게 된다. 이때 여객기 비상구를 열려면 14t에 달하는 힘이 필요해 아무리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도 혼자 힘으로 문을 열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에 일부 기종을 제외하곤 비행 상태가 되면 자동으로 잠금장치까지 작동해 고도가 낮아져도 비상구가 열릴 위험성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여객기의 고도가 낮아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활주로와 가까운 상공 200~500m 부근일 경우는 기압 차이가 거의 없어지며, 착륙 또는 이륙 직전에는 성인 남성이라면 무난히 비상구를 열 수 있다.
더구나 이착륙 시에는 승객은 물론 승무원도 안전띠를 매고 좌석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비상구 근처의 승객이 갑자기 비상구 레버를 당길 경우 대처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게 항공사들의 설명이다.
여객기의 경우 사고가 나면 승객이 바로 탈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므로 비상구를 사람이 열 수 없게 막아둘 수도 없다는 고민이 있다.
정부는 여객기 비상구 강제 개방이 문제가 되자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국토교통부는 '항공운송 사업자의 항공기 내 보안요원 등 운영 지침 일부 개정규칙안'을 통해 승객이 여객기에 타면 '함부로 비상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항공사들의 이륙 전 의무 안내방송에는 기내 흡연과 전자기기 사용, 승무원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등이 '형사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비상구 경고 안내를 추가한 것이다.
일반 상황에서 비상구 조작이 금지 행위임을 안내하는 스티커를 승객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부착하고, 기내 보안요원을 대상으로 불안·초조 등 이상 행동을 보이는 승객을 식별하고 감시하는 '행동 탐지 교육'을 1년에 2시간 이상 듣게 하도록 했다.
승객 관리 방안 중 하나로 항공사별 '블랙리스트' 성격의 고객 제재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각 항공사는 항공 보안법 제23조에 따라 안전 운항을 위한 협조 의무'를 다하지 않은 승객에 대해 탑승을 거절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1999년 1월부터 '특정 고객 처리 절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안전 운항을 저해하고 유·무형의 폭력을 행사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손님의 탑승을 거절할 수 있다.
2017년 6월부터 시행된 대한항공의 '노 플라이'도 유사하다. 승객이 신체 접촉을 수반한 폭력 행위, 성적 수치심 및 혐오감을 야기하는 행위, 지속적인 업무방해 등 형사처벌 대상 행위의 전력이 있을 경우 탑승을 거부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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