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쇄신으로 '초격차' 회복 총력…변화 속 안정도(종합)
전영현, 대표이사에 메모리사업부장도 맡아…'적자' 파운드리 수장 교체
정현호·한종희 부회장은 유임…DX 부문은 조직 안정에 무게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김아람 강태우 기자 = 반도체 사업 진출 50주년을 앞두고 27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정기 사장단 인사에는 위기에 빠진 반도체 사업의 '초격차'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겼다.
특히 지난 5월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에 구원투수로 영입한 전영현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내정, 주력인 메모리를 중심으로 '전영현 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 전영현 체제 구축…빨라지는 '메모리 우선' 전략
최근 불거진 '삼성 위기론'의 중심은 삼성전자의 주력인 반도체 사업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수요가 폭증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주도권을 놓치고, 파운드리 적자가 길어지면서 실적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이번 사장단 인사를 통해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DS 부문의 대대적인 분위기 쇄신을 도모했다.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DS부문장인 전영현 부회장의 대표이사 내정과 메모리사업부장 겸임이다.
메모리 사업 1위 지위를 회복하고 경쟁력 강화에 힘쓰라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는 분석이다.
이 회장은 앞서 지난 25일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저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느때보다 녹록지 않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전 부회장은 2000년 메모리사업부에 입사해 D램 개발을 맡았고 2014년 메모리사업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무엇보다 반도체 수장인 전 부회장이 업계 전반에 퍼진 삼성 위기론을 돌파할 카드로 '메모리 초격차'를 꺼내든 만큼 메모리 경쟁력 확보가 최우선 순위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시장 우려가 크고 경쟁력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HBM에 전사 역량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전 부회장은 지난 7월 취임한 지 한 달여 만에 HBM 개발팀을 신설했다.
아울러 '전략통'인 김용관 사장이 DS부문에 신설된 경영전략담당 자리에 앉은 만큼 엔비디아와의 협력, 파운드리 고객사 수주 등 고객 비즈니스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HBM 6세대인 HBM4부터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와의 협력 가능성도 내비쳤다.
전 부회장은 경계현 사장이 맡았던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도 겸임하며 메모리 기술 경쟁력 회복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경 사장은 미래사업기획단장 자리도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 사장에게 위임하며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이번 인사는 (HBM과 같은) D램 쪽에 힘을 싣기 위한 것으로 당연한 결정"이라며 "메모리가 삼성전자의 캐시카우이자 경쟁력이고,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이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 파운드리 분위기 쇄신…기술력으로 TSMC 추격 나선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파운드리 부문의 시장 지배력과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파운드리는 수주 부진과 낮은 가동률에 적자 탈출이 늦어지며 삼성전자 실적의 발목을 잡고 있다. TSMC와의 격차도 더욱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위기를 헤쳐 나갈 돌파구로 우선 파운드리 수장을 전격 교체했다.
미국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이끌어온 한진만 DS부문 미주총괄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파운드리사업부장을 맡는다.
파운드리 사업이 고객 수주 사업인 만큼 한 사장은 미국에서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강화에 나설 전망이다.
특히 최근 이재용 회장이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설계) 사업의 분사에 관심 없다고 밝힌 만큼, 사업 지속 의지에 따른 무게감이 반영된 인사로 풀이된다.
또 파운드리사업부에 사장급 최고기술책임자(CTO) 보직을 신설해 힘을 실었다.
파운드리 CTO를 맡은 남석우 사장은 반도체 연구소에서 메모리 전제품 공정개발을 주도한 반도체 공정개발 및 제조 전문가다. 이번에 글로벌제조&인프라총괄 제조&기술담당에서 자리를 옮겼다.
파운드리 업계에서 2나노 이하 미세공정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남 사장은 시장 선점을 위한 선단 공정 기술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남 사장이 반도체 공정 전문성과 풍부한 제조 경험 등 다년간 축적한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파운드리 기술력 제고를 이끌 것이라고 삼성전자는 기대했다.
◇ 변화 속 안정…정현호·한종희 부회장은 유임
이처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 가운데 나머지 인사에서는 안정을 함께 추구한 점도 눈에 띈다.
전 부회장과 함께 '대표이사 투톱'인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과 이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은 당초 예상대로 모두 유임됐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에서 변화와 안정을 동시에 추구한 인사라는 해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인적 쇄신도 필요하지만 총수의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조직의 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며 "반도체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조직에서의 큰 변화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 부회장은 기존에 겸임하던 생활가전(DA)사업부장 뿐 아니라 이번에 신설된 품질혁신위원회 수장도 겸하게 됐다. 당초 업계 안팎에서는 새 DA사업부장 선임 가능성도 거론된 바 있다.
노태문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사장)을 비롯해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 등도 모두 유임됐다.
지난해 말 퇴임했던 구글 출신 이원진 사장도 이례적으로 1년 만에 경영 일선으로 복귀해 마케팅과 브랜드, 온라인 비즈를 총괄한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부문 역시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등용하기보다는 기존에도 요직을 맡았던 인사의 이동이 많아 예상한 만큼의 '칼바람'은 아니라는 반응도 있다. 실제로 비메모리 실적 부진으로 당초 교체 가능성이 거론된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은 이번 인사에서 유임됐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사장단 인사를 통해 유추해보면 향후 단행될 부사장급 이하 임원 인사 폭은 예상보다 다소 커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전자는 부사장 이하 2025년도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hanajjang@yna.co.kr ri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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