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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은 조선인 강제노역현장…전시물엔 '강제노동' 표현없어
조선인 1천500명 동원…日정부, 조선인 노동자 명부 공개도 안해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24일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리는 일본 사도(佐渡)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1천500명가량 동원돼 강제노역했던 비극적 역사 현장이다.
유네스코가 지난 7월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에 앞서 일본 정부는 매년 노동자 추도식을 개최하기로 한국에 약속했고 이번에 처음으로 열리게 됐다.
니가타현 사도섬에 있는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에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구리 등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주로 이용됐는데 이때 식민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차별받으며 일했다.
니가타현 당국이 1988년 발행한 '니가타현사'는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해 "1939년 시작된 노무동원 계획은 명칭이 '모집', '관(官) 알선', '징용'으로 변하지만, 조선인을 강제로 연행했다는 사실에서는 동일하다"고 기술했다.
역사 연구자인 다케우치 야스토 씨는 최근 출판한 '사도광산·조선인 강제노동 자료집'에서 일본 자료와 증언 등을 토대로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수가 1천500명을 넘는다"고 밝혔다.
다케우치 씨는 "동원된 조선인들은 경찰과 기업으로부터 감시받았다"며 "직장을 옮기는 자유를 빼앗겼고 죽음을 무릅쓰고 생산량을 늘린다는 구호 아래 생명을 건 노동을 강요받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시민단체가 강제동원 경험자에게 청취 조사를 실시한 결과 "매일 (일왕에 충성을 강요하는) 황민화 교육을 받았다. 말을 듣지 않으면 '기합'을 받았다. 구타 등"이라고 증언했다.
일본 정부는 애초 17세기 사도광산에 금 채굴량이 많았다는 점만을 들며 에도 시대 관련 유적만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꼼수'를 썼다.
하지만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지난 6월 일본 정부에 "전체 역사를 현장 레벨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전시 전략을 책정하고 시설과 설비 등을 갖추라"고 권고하면서 강제노역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손을 들어줬다.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마지못해 추도식을 개최하는 한편 사도섬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일부 구역에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전시 시설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전시물에 '강제'라는 표현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7월 문을 연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조선인 노동자 전시실에 설치된 패널에는 "한반도 출신 노동자는 일본 출신자와 비교해 위험한 갱내 작업에 종사한 사람 비율이 높았다", "한반도 출신자는 1개월 평균 작업일이 28일이었다는 기록도 있다"며 당시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인보다 더 힘든 일을 하도록 내몰렸고 처우도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조선인 강제노동과 관련해서는 '모집', '관(官) 알선', '징용'이 한반도에도 도입됐고, 일본이 한반도에 설치한 행정기관인 조선총독부가 관여했다는 사실도 명시됐다.
다만 '강제 연행', '강제 동원' 등 '강제'가 포함된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가 한국에 사도광산 기숙사 터에 조선인 노동자와 관련된 곳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우기로 약속한 데 따라 사도시는 지난 8월 말 임시 안내판을 기숙사 터 3곳에 설치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 안내판에는 "전시 중 이 기숙사에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가 거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내용 등이 일본어와 영어로 적혀 있다.
다만 이 안내판에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전시물처럼 '강제성'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강제성을 적시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지 시민단체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는 최근 자국 정부와 사도시에 보낸 요청서에서 "동원된 많은 조선인이 도망치거나 사망하는 등 가혹한 노동을 했다고 기술돼 있지만 강제노동은 인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조선인 노무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도광산에서의 강제노동을 명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뿐 아니라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명부조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과 사도광산 등재 협상 등 계기로 니가타현 현립문서관에 있는 '반도노무자 명부'를 제공하라고 지속해서 요청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응하지 않고 있다.
명부는 1983년 니가타현 지역 역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촬영돼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남아 있다. 명부에 기록된 조선인 노동자는 수백명 규모로 알려졌다.



sungjin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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