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직선제 판사 '정부편향' 우려…"한국 기업에도 부담"
지한파 석학 "국제중재 의지 가능성"…현직 대법관들 줄 사임 전망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내년부터 멕시코 사법부를 채우게 될 '직선제' 법관들은 각종 대(對) 정부 소송에서 정부와 집권당에 편향된 법률 해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멕시코 산업도시 몬테레이에 있는 누에보레온대학의 다니엘 플로레스 쿠리엘 경제학부 교수는 29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판사 후보자들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여당 지지 성향을 보일 수 있다"며 "여당 지지 판사들이 사법부 내 다수를 형성할 경우 기업들로서는 특정한 상황에서 소송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같은 배경으로 멕시코 여당인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에서 판사 직선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운동가 청원에 따른 동남부 열차(트랜 마야) 건설 중단이나 에너지 국유화를 위한 전력산업법의 무효화 등으로 법원이 주요 정책에 줄줄이 제동을 걸자, 전 정부에서 '사법부 개혁'을 기치로 판사 직선제를 들고나왔다는 것이다.
쿠리엘 교수는 "몇 가지 사례에 비춰 볼 때 이 제도는 행정부가 앞으로 선출될 판사의 결정을 통제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법관들이 "행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을 내린다면" 자신의 임기를 담보할 수 없다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과 멕시코 간 경제 정책을 비교 분석하는 저서('한국과 멕시코의 경제 성장, 균형의 재조정')를 개정판까지 내는 등 멕시코 내 대표적 지한파 석학으로 꼽히는 쿠리엘 교수는 멕시코에 투자한 기업들의 법적 분쟁 대응 방식에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한국 기업을 포함한 외국 업체들이 예컨대 당국 허가 취소에 맞서 재판을 하려할 때, 현재는 독립적인 사법부에서 원고와 피고 사이 누가 옳은지 판단해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며 "그러나 사법부가 정부에 유리하게 편향된다면, 기업들은 정부 조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고 꼬집었다.
쿠리엘 교수는 그러면서 "멕시코 법원으로 사건을 가져가는 게 소용없다고 판단된다면,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거나 중재 메커니즘에 의지해야 한다"며 향후 멕시코에서 국제 중재 심판이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지에서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대법관들의 사의 표명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날 알프레도 구티에레스 오르티스 대법관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오르티스 대법관은 상원의장에게 보낸 사임 요청서에서 "저는 대중의 지지에 의존하는 공직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며 "이는 소위 사법개혁의 합헌성에 대한 암묵적 수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2012년 12월 1일 대법관에 오른 그는 내년 8월 31일을 임기종료 날짜로 적시했다.
최근 멕시코에서는 의회 의결을 거쳐 7천여명의 법관(대법관 포함)을 국민 투표로 선출하는 판사 직선제 도입, 대법관 정원 감축(11명→9명), 대법관 임기 단축(15→12년), 대법관 종신 연금 폐지, 법관 보수의 대통령 급여 상한선 초과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이 이뤄졌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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