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에 전율"…유럽서 작품 배경 4·3 알리기
4·3재단 이사장 "세계화 꿈도 못 꿨는데…문학작품으로 승화"
제주도, 유네스코 기록유산 추진…베를린·런던서 전시·심포지엄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제주에 있는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전율이 일었습니다. 1988년부터 4·3을 알려왔는데, 세계화는 감히 꿈도 못 꾸고 국내에 알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 줬습니다."
1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4·3 영령들이 조율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한강은 지난 10일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노벨위원회 측과 인터뷰에서 새 독자들에게 제주 4·3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먼저 권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빈집에 내려가 인선 어머니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 이야기다. 꿈과 현실을 오가고 눈의 이미지가 전면에 깔린 이 작품은 한국 현대사의 또다른 국가폭력 5·18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에 비하면 역사적 사실보다 문학성에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도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세 번 읽었다는 김 이사장도 처음에는 4·3을 더 직접 드러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역사서를 읽자는 게 아니라 문학작품으로 승화된 4·3을 보자는 것"이라며 "4·3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보다는 궁금증을 갖고 역사책을 찾아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기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3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 때 경찰 발포로 인한 민간인 사망으로 시작해 이듬해 4월3일 봉기 등을 거치면서 1954년 9월21일까지 군·경 토벌대가 제주 민간인을 좌익 무장폭도로 몰아 학살하고 투옥한 사건이다. 2000년대 들어 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로 지금까지 1만4천871명이 희생자로 판정됐으나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요원하다.
김 이사장은 "작가가 유족들 상처를 다시 헤집고 싶지 않아서 직접 취재하지 않고 기존 자료를 참조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탄압과 저항, 학살로 이어지는 전개 과정 중 작가는 마지막 학살 국면에 초점을 맞췄다"며 독자들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 다른 역사책도 참고해 4·3의 전체 전개 과정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3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제주도는 이날부터 20일까지 베를린의 전시공간 팔레포퓔레르에 4·3 기록물과 사진, 영상 등을 전시한다.
전시 개막과 함께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 댄 스미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장은 "제주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뛰어난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며 "오늘날 제주는 처음 50년의 침묵 이후 최근 25년간 진실을 살피는 과정이 감동적이라는 점에서 기억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군사독재 시절 금기였던 4·3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도 1978년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을 통해서였다.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교수는 "'순이삼촌'을 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억이 있다"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세계 시민에게 4·3의 의미를 전달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4·3 심포지엄과 전시회는 오는 16일부터 영국 런던에서도 열린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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