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스타머 취임 100일…지지율 급락 속 경제현안이 관건
복지삭감·선물스캔들 타격…대외정책은 보수당과 차별화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영국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총리가 12일(현지시간) 14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해 취임한 지 100일을 맞는다.
노동당은 7월 4일 총선에서 압승했고 스타머 총리는 그 이튿날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국가 리셋"을 선언하며 취임했다.
선거 압승 후 정부 출범 초기에 인기를 누리는 '허니문'은 짧았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4∼7일 1천133명에게 물은 결과, 스타머 총리 호감도는 26%로 비호감도 52%의 절반에 그쳤다. 순호감도는 -26%포인트로 취임 후 100일 사이에 13.5%포인트 낮아졌다.
영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는 응답자는 58%로,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했던 때보다 9%포인트 높아졌다.
유고브가 지난 8∼9일 2천13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59%가 새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18%만 지지한다고 답했다.
총선에서 노동당을 뽑았다는 응답자의 47%가 스타머 정부에 기대했지만 실망했다고 응답했다.
노동당의 선거 압승이 노동당에 대한 실제 지지보다는 보수당 정부에 대한 실망을 등에 업은 반사이익이었던 만큼 기대가 빠르게 식은 것으로 보인다.
노팅엄대의 정치학자 스티븐 필딩은 AFP통신에 "이것이 국가 리뉴얼(탈바꿈)을 향한 행진의 시작이라면 첫발은 아주 불확실했다"고 평가했다.
스타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혼란을 겪었다.
7월 말에는 사우스포트 어린이 댄스교실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으로 어린이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용의자가 무슬림 이민자라는 헛소문이 온라인에서 확산하면서 전역에서 폭력적인 극우 시위가 벌어졌다.
스타머 총리가 강경하게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폭력 사태는 잦아들었지만 이민 문제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뇌관임이 재확인됐다.
이번 유고브 조사에 이민 문제를 정부가 잘못 다룬다는 응답률은 70%로 공공의료(66%), 조세(62%), 복지혜택(61%)보다도 높았다.
'국가 리셋'보다 '참모진 리셋'부터 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수 그레이 비서실장은 총리실 내 의사소통과 결정을 지나치게 통제한다는 '문고리 권력' 논란과 스타머 총리보다 높은 연봉 등으로 구설에 오른 끝에 이달 초 사임했다.
여기에 스타머 총리를 비롯한 고위 각료들이 기부자나 기업 등에서 의류, 공연 관람권, 숙박 등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선물 스캔들'은 보수당의 '파티 게이트'를 맹비난했던 노동당에 큰 타격을 가했다.
노동당 정부는 외교 정책에서 보수당과 차별성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스타머 정부는 하마스와 연계 의혹이 제기됐던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자금 지원을 재개한 데 이어 국제법 위반 위험을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허가를 일부 중지하기로 했다.
이스라엘이 반발했지만 영국 내 여론은 나쁘지 않다. 이번 유고브 조사에서 무기 수출 중단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56%로 반대한다는 응답(24%)을 앞섰다.
스타머 정부의 가장 큰 난관은 경제다. 총선 전 보수당 정부의 인기가 급락한 요인이 높은 물가와 공공부문 서비스 악화였던 만큼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이 거세다.
레이철 리브스 재무장관은 보수당 정부에서 물려받은 공공부문의 '재정 구멍'이 220억 파운드(약 39조원)에 달한다며 공공지출 삭감 계획을 밝혔다.
두 자녀 복지 혜택 제한을 유지하고 노인 겨울 난방비를 대폭 삭감하기로 했는데 이런 계획은 당장 노동당 내부에서도 반발을 샀다.
이달 말 스타머 정부의 첫 재정 계획과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공공부문 개선을 위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증세와 공공지출 삭감 어느 쪽으로도 상황을 돌파하기 쉽지 않은 처지다.
노동당 정부는 기업 자산이나 주식 등에 붙는 자본이득세 세율 인상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각계의 반발이 심하고 실행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입소스 조사에서는 62%가 노동당 정부의 장기 경제계획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키런 페들리 입소스 정치디렉터는 "예산안이 안착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정치적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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