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AI가 밝혀낸 단백질 구조…모든 생명현상 비밀 풀 열쇠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이비드 베이커와 데미스 허사비스, 존 점퍼는 50년 넘게 난제로 꼽혀온 단백질의 복잡한 구조를 예측하는 문제를 해결해 온갖 생명 현상을 조절하고 나아가 새로운 단백질을 창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긴 끈처럼 연결돼 구성되는데, 이 아미노산 분자 간 힘에 의해 끈이 접히고 뒤틀리며 단백질의 독특한 구조를 만든다.
이를 통해 단 20종의 아미노산만으로도 근육 단백질에서 항체에 이르기까지 생명현상에서 여러 역할을 하는 수많은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즉 아미노산이 만드는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내면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빠르게 다가설 수 있는데, 베이커는 단백질 구조에서 아미노산을 밝혀내는 방법을, 허사비스와 점퍼는 아미노산 서열로 구조를 순식간에 예측해내는 인공지능(AI)을 개발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과 교수는 "노벨 화학상을 받은 연구 중 생체분자 구조를 밝히는 기술을 개발한 연구가 3개, 실험으로 분자 구조를 밝힌 것만으로도 7개 이상"이라며 "이번 수상은 이런 실험 없이도 컴퓨터 계산으로 실험 수준에 맞먹는 정확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커는 1990년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로제타'를 개발했는데, 이후 이를 응용해 완전히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드 노보(de novo) 설계' 분야에 뛰어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단백질을 만들면 로제타가 어떤 아미노산 서열이 이런 단백질을 생성할 수 있는지 계산해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베이커는 자연계 어떤 단백질보다도 큰 93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세상에 없는 단백질을 만들어 2003년 공개했다.
허사비스와 점퍼는 아미노산 서열과 단백질 구조 학습에 특화한 AI 단백질 구조예측 프로그램 '알파폴드'를 만들어 단백질 구조 예측 경쟁을 사실상 끝내버렸다.
알파폴드는 1994년 출범한 단백질 구조 예측 경쟁 프로젝트 'CASP'의 최고 성적이 20여년 간 30~40%대 정확도에 머물러 있던 것을 2018년 단숨에 60%대까지 올렸다.
이후 존 점퍼가 주도한 알파폴드 2는 트랜스포머라 불리는 신경망을 활용해 2020년 단백질 구조 예측 정확도 90%를 달성하면서 구조 예측의 신기원을 열었다.
이들의 연구성과로 인류는 2억개에 달하는 단백질 구조를 대부분 예측할 수 있게 됐으며, 이를 통해 생명의 기능과 질병의 원인, 항생제 내성, 플라스틱 생분해 등 수많은 응용 분야가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그는 "감염병이든 암이든 모든 건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단백질 분자와 연관돼 있다"며 "이 분자를 어떤 질환이냐에 상관없이 같은 방법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단백질 구조 문제는 잠재력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석 교수는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도 AI 분야가 받은 것에 대해 1900년대 과학 분야 발전을 이끈 양자역학의 태동에 비유하며 AI가 수학이라는 과학의 도구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석 교수는 "1900년대 초 양자역학으로 수많은 노벨 물리학상이 나왔는데, 이에 준하는 게 2000년대 초 AI라고 생각한다"며 "양자역학이 물리학과 화학, 공학에서 많은 파급효과를 가져왔듯 AI도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에 많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 기초과학의 틀을 깨는 새로운 기초과학이라 생각한다"며 "수학이 자연의 언어이고 물리학이 수식을 통해 현상을 이해하는 개념이었다면, 신경망과 같은 열린 수식을 통해 기초과학을 풀 수 있음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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