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러시아인, 세르비아 속 '작은 러시아' 건설 중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자국을 떠난 러시아인들이 세르비아에 '작은 러시아'를 건설 중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쟁이 발발한 2022년 2월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세르비아에 임시 거주를 등록한 러시아인은 3만명 이상이다. 많은 러시아인이 문화와 종교가 유사한 구소련권 국가 세르비아에 터전을 잡았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로 망명한 러시아인의 수보다는 적지만 인구 200만명이 사는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러시아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고 통신은 전했다.
베오그라드에는 러시아인들이 운영하는 클럽, 유치원, 의료기관이 생겨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상점에서 음식을 구입한다. 러시아 밴드, 가수, 코미디언이 러시아 클럽에서 공연하고 러시아 예술가들이 러시아인 소유의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한다.
세르비아에 정착한 러시아인 가운데 상당수가 현지 사회와 교류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베오그라드 내에 러시아 공동체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세르비아 사업자 등록부에 따르면 이 기간 러시아인들은 인터넷 기반 서비스부터 접객업, 스포츠 학교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1만1천81개의 사업체를 설립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수의사 빅토르(42)는 징집을 피해 2022년 가을 세르비아로 건너온 뒤 이곳에서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다. 관련 자격증이 없지만 밥벌이에는 문제가 없다. 그를 찾는 러시아인 고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배관, 전기 설비, 창문을 수리하고 심지어 가구를 만들기도 한다"며 "세르비아인 고객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베오그라드에 거주하는 정치학자 알렉산다르 조키치는 "러시아 문화의 부름이 너무 강해서 1세대 러시아 이민자들은 세르비아 사회든 서구 사회든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적응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인들이 현지 사회에 흡수되지 못하고 그들끼리 똘똘 뭉쳐 사는 이유로 세르비아인들의 적대감을 꼽는 의견도 있다.
로이터 통신은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한다면서 그래서 전쟁이 싫거나 징집을 피해 러시아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전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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