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대만 도움받은 금융기관, '주민탄압' 니카라과 경찰 지원
WP "중미경제통합은행, 정부비판 인사 구금·고문 앞장선 경찰에 자금"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중미 균형개발과 경제통합을 목표로 설립한 지역다자개발은행(MDB·Multilateral Development Bank)인 중미경제통합은행(CABEI)이 반정부 인사 탄압에 앞장선 니카라과 경찰에 적지 않은 자금을 지원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CABEI는 2018∼2022년 니카라과 인프라 투자 및 환경보호 프로젝트 등에 26억5천만 달러(3조6천억원 상당)를 대출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이 중 상당한 금액은 니카라과 경찰이 전국에 최소 19개의 경찰서 내지는 지구대를 건설하거나 개조하고, 무선·통신 시스템을 새로 단장하거나 데이터 센터를 신축하는 데 쓰였다고 WP는 전했다.
WP에서 분석한 정부 문서에 따르면 '경찰력 동원을 보장하고 경찰의 작전 수행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버스와 보트 구매 입찰을 진행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다니엘 오르테가(78) 대통령은 2018년 반(反)정부 시위를 필두로 거세진 '정부 퇴진' 요구 목소리를 강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시위자를 비롯해 평소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던 정치권 인사와 사회 운동가, 종교인, 언론인, 학생 등을 상대로 발포하거나 구금 후 고문했는데, 이는 대부분 니카라과 경찰과 군에 의해 이뤄졌다.
1985∼1990년 한 차례 정권을 잡았던 오르테가 대통령은 2007년 재선 뒤 개헌을 통해 연임 제한을 없애고 계속해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중미 니카라과 대선에 출마해 오르테가 대통령에 맞섰다가 정치범으로 몰려 미국으로 추방된 후안 세바스티안 차모로 박사(경제학)는 WP에 "다른 국제 개발은행들이 니카라과에 빌려줬던 자금을 회수하거나 비정부기관에 직접 전달했으나, CABEI의 대출금은 그렇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지난 4월 니카라과의 한국 주재 대사관 폐쇄·북한 주재 대사관 설치계획 당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기도 한 차모로 박사는 "2018년 이후 CABEI는 니카라과 공공사업의 주요 자금원이 됐다"고 덧붙였다.
미 중앙정보국(CIA) 월드 팩트북(World Factbook)에 따르면 2019년 니카라과 정부 예산은 35억 달러(4조7천억원 상당)였다고 WP는 전했다.
실제 2018년 '시위대 사살 명령'에 불복하고 코스타리카로 망명한 니카라과 경찰관 출신 한 인사는 "2018년까지 몇 년간 더 좋은 제복과 더 정교한 무기들이 지원됐다"며 "경찰의 재정 확대와 역량 강화가 뚜렷했다"고 회상했다.
이와 관련, 2018∼2023년 CABEI를 이끈 단테 모씨 전 총재는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 "한 국가가 CABEI로부터 대출을 받을 만큼 민주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총재 권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WP는 모씨 전 총재가 스스로 '독재자의 은행장'이라고 규정되는 것에 반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히셀라 산체스 마로토 현 총재는 이런 견해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지난 10년간 승인된 모든 대출을 재검토하는 한편 새로운 반부패·인권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WP는 보도했다.
CABEI의 창립회원국은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등 5개국이다.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벨리즈 등이 역내 비창립 회원국으로, 멕시코, 스페인,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쿠바 등이 역외 회원국으로 각각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국과 대만은 역외 회원국으로, 별도의 파트너십을 통한 협조 융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국 역시 동맹국과 협력해 은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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