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뭄에 남아프리카 7천만명 기아 위기…"풀씨로 연명"
엘니뇨 여파에 식량 부족 고통…일부 국가는 재난 선포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엘니뇨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남부지역에 닥친 극심한 가뭄이 수천만 명을 기아 위기로 몰아넣었다고 미 NBC 방송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남아프리카 16개국이 참여하는 정부 간 사회경제 협력체인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이어진 엘니뇨의 여파로 아프리카 남부지역에서 약 7천만명이 식량 부족으로 굶주리고 있다.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은 지난 5월에 끝났지만, 엘니뇨가 유발한 가뭄으로 농작물 재배 기회를 한차례 놓친 남아프리카에서는 오는 10월 우기까지 그 여파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른 광범위한 식량 부족으로 잠비아와 짐바브웨는 기아에 따른 국가 재난을 선포했고, 레소토와 나미비아는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말라위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국제 아동 기구(유니세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900만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은 아동이다.
내륙 국가인 말라위는 전 국민의 80%가 빗물로 농사를 짓는데 이번 가뭄으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말라위 남부에 위치한 농촌 마을 장기야에서는 건조한 날씨로 초목이 타들어 갔다. 이 마을에서는 통상 우기가 끝날 무렵 곡식을 수확하지만, 올해는 푸른 잎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마을에서 옥수수와 카사바 농사를 짓는 마사웃소 음왈레 씨는 "가뭄으로 삶이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풍년이면 1㏊ 땅에서 18포대의 옥수수와 카사바를 수확하는 경우도 있는데 올해는 2포대가 전부다. 10월 우기까지 버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서 바짝 마른 풀씨를 훑어내 연명하는 가족들도 있다고 NBC는 전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4월엔 허기를 면하려 독성이 있는 식물 뿌리를 캐 먹은 주민 17명이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SADC 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17일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회의를 열고 연초에 시작된 가뭄으로 곡물과 가축 생산이 직격탄을 맞았으며, 식량이 부족해지고 경제도 타격을 입었다고 우려했다.
엘리아스 모가시 SADC 사무국장은 "강우를 늦추는 올해 엘니뇨의 부정적 영향이 대부분 지역에 영향을 미치면서 2024년 우기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굶주림에 내몰린 주민들이 다른 생계 수단을 찾는 과정에서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악순환도 빚어진다.
음왈레 씨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격주로 사흘씩 숲에서 관목을 베어다 숯을 만들어 팔고 있다. 그는 삼림 벌채가 기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지만 극심한 가뭄에 다른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고 호소한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이러한 심각한 가뭄이 더 자주 찾아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가 주도한 지난해 연구는 온실가스 배출이 엘니뇨 현상을 더 자주 일으키고 더 심각한 여파를 끼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남아프리카 국가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지만, 국제사회는 이런 요청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거나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주앙 로렌수 앙골라 대통령은 "지난 5월 가뭄 대응을 위해 55억달러(약 7조3천억원)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모인 지원금은 불행하게도 예상치에 못 미친다"며 "엘니뇨의 직격탄을 맞은 주민들을 위해 역내 국제사회 파트너들이 더 노력해달라"고 촉구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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