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1700㎞ 가로지른 이스라엘 예멘공습 눈감았나
사우디 국방부, "우리와는 무관" 즉각 부인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이스라엘의 예멘 직접 공습의 '불똥'이 사우디아라비아로 튀었다.
이스라엘군은 20일(현지시간) 예멘 반군 후티가 통제하는 예멘 서남부 항구도시 호데이다를 전투기 편대로 전격 공습했다. 전날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아파트에서 후티의 드론 공격을 받아 민간인 사상자가 나자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 공격을 단행했다.
후티의 이스라엘 공격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수도나 다름없는 텔아비브 도심의 방공망이 처음 뚫린 셈이어서 이스라엘로선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최신예 F-35 전투기를 비롯해 F-15 전투기, 정찰기까지 가동해 호데이다 항구의 정유시설, 유류 탱크, 전력 시설 등 인프라를 정밀 타격했다.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유일하게 보유한 F-35를 동원한 것은 압도적 전력 우위를 과시해 재발을 막기 위해서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에서 예멘 호데이다까지 거리가 약 1천700㎞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군이 전투기의 공중급유기를 함께 띄웠을 만큼 장거리 작전이었다. 이에 맞춰 작전 명칭도 '롱 암'(long arm)으로 지었다.
미사일이 아닌 전투기를 사용한 장거리 폭격은 노출 가능성이 크고 실패 시 인적·물적 손실 비용이 많은 탓에 상당한 위험을 떠안아야 해 과감해야 하는 작전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최신 전투기 편대를 출격시킨 것은 '결심하면 어디라도 타격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로 해석된다.
이스라엘 전투기 편대가 어느 항로를 왕복 비행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최단 거리를 택했다면 좁은 홍해의 공해 상공을 날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사우디의 영공을 침범해 가로지르는 항로를 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전투기 편대가 왕복 3천㎞가 넘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자 의심의 눈길은 사우디로 향했다.
이스라엘은 사전에 미국 등 동맹에 이 작전을 통보했다고 했는데 홍해 영공을 감시하는 사우디에도 이를 알렸을 가능성이 있고 사우디가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10년째 예멘 반군 후티와 전쟁 중인 사우디로선 이스라엘의 공습은 '불감청 고소원' 격이라고도 할 수 있어 역학 구도상 이런 의혹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게다가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를 모색하는 사우디로선 홍해 상공을 가로지르는 이스라엘 전투기들을 외면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하지만 중동 이슬람권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가 여전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야 한다는 대의를 고려하면 이슬람권의 지도국 사우디가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이스라엘의 홍해 상 폭격 작전을 좌시해선 안 되는 처지다.
사우디에 대한 의심이 커지자 사우디 국방부의 투르크 알말리키 대변인은 21일 일단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어떤 세력도 자국 영공에 침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원론적으로 반응했다.
사우디 외무부는 21일 이스라엘의 폭격에 대해 "중동 내 긴장 상황을 악화했고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려는 노력을 중단시켰다"고 비판하면서도 "모든 당사자가 최대한의 인내를 발휘해 달라"라고 제3자 입장에서 촉구했다.
이스라엘과 후티 어느 한쪽에 기울기 어려운 사우디의 애매한 입지가 이 성명에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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