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 이란 대선 막후 조율했나…"일부러 온건후보 내세워"
"투표율 전망 13%에 충격…대선 후보군으로 페제시키안 밀어"
"경제난·억압 국민 분노 달래고 서방과 긴장 고조 완화 등 포석"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최근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인지도가 낮은 온건파 후보가 당선된 이변에는 국내외 정세를 감안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18일(현지시간) 하메네이가 대선을 앞둔 지난 5월 정보당국으로부터 암울한 투표율 전망을 보고 받고 신중히 선거판을 짰다고 보도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자유 탄압에 분노한 많은 국민이 대선 투표를 보이콧할 계획을 세웠고 투표율 전망이 약 13%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보 당국의 보고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하메네이가 처음엔 강경파가 지배할 경선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뢰할 만한 온건파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5명의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5월 말 자신의 저택에서 가장 믿을 만한 측근들과 최소 3차례에 걸쳐 관련 회의를 했다.
하메네이는 당시 회의에서 낮은 투표율이 기득권층인 이슬람 성직자들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며 선거를 주도할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대선은 지난 5월 강경론을 주도하던 브라힘 라이시 당시 이란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숨진 데 따른 것이었다.
이 사고는 그를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밀었던 강경파들의 계획을 어긋나게 했으며, 강경파들의 대선 경쟁이 촉발되기도 했다.
하메네이에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 영향으로 서방과의 긴장이 고조되고 국내 민심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이란 체제를 보존하는 게 중요했다.
이란 내부 소식통은 하메네이가 이란에는 다양한 사회계층의 호감을 사되 시아파 신정일치(이슬람 성직자 통치론)에 도전하지 않을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메네이는 두 번째 회의에서 권력자들의 단결을 촉진하고 기득권층(성직자)과 국민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인물로 페제시키안을 추천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이란의 친개혁 분석가인 사이드 레일라즈는 이를 놓고 "이란의 생존을 보장하는 최고지도자(하메네이)의 흠 잡을 데 없는 계획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페제시키안은 국가든 기득권층이든 어떤 국내 위기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최고지도자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승계에 관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중동의 한 서방 외교관은 "도널드 트럼프(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이란은 서방과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긴장을 완화할 온건한 인물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페제시키안은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로부터 대선 출마 승인을 받은 6명에 포함됐지만 처음에는 승인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력한 강경파 후보 2명도 승인을 받는 등 페제시키안을 미는 하메네이의 계획은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보이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다.
페제시키안은 지난달 28일 치러진 대선에서 44.4%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지만, 과반에는 못 미쳤다.
그는 이달 5일 실시된 결선 투표에서 '하메네이 충성파'인 강경 보수 성향의 후보를 제치고 54.8%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
페제시키안은 국영 TV에 "최고지도자에게 감사드린다"며 "그가 아니었다면 내 이름이 쉽게 투표함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제시키안은 선거전에서 서방과 관계 정상화, 이란핵합의(JCPOA) 복원, 히잡 미착용 단속 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많은 분석가는 페제시키안이 이란의 강력한 성직자 및 안보 '매파'들과 대결할 뜻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모든 공약을 이행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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