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대통령, 유혈사태 촉발 증세법안에 일단 거부권
"시위 강경진압 사망자 22∼23명"…27일 평화행진 예고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이 유혈사태를 촉발한 증세법안의 서명을 일단 거부하고 의회에 재의를 요구했다고 현지 매체 더스타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대통령실의 한 소식통은 이 매체에 루토 대통령이 전날 의회가 가결한 '재정법안 2024'의 수정안을 이날 의회로 다시 돌려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안은 27억 달러(약 3조7천억원)의 세금을 추가로 인상하는 대규모 증세를 골자로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가 차관을 받기 위해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하는 케냐 정부는 과중한 부채를 감축한다는 이유로 이 법안을 마련했다. 케냐 정부는 이자에만 세수의 37%를 써야 할 만큼 재정 적자가 심각하다.
애초 지난달 정부가 의회에 제출할 때 포함됐던 빵에 대한 16%의 부가가치세를 비롯해 식물성 기름 소비세, 설탕 운송 부가가치세, 2.5%의 자동차세, 현지 생산 제품에 대한 환경 부담금 등은 여론의 반대로 제외됐다.
그러나 이같은 수정으로 2천억 실링(약 2조2천억원)이 부족할 것이라고 재무부가 경고하자 계란을 비롯한 기본 식료품 가격과 전화·인터넷 사용료 인상 등은 제외하지 않았고 연료 가격과 수출세 인상 등이 추가되면서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전날 케냐 전역에서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생)가 주도한 시위에서는 경찰의 유혈 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했다.
나이로비에서는 의회의 재정법안 가결 소식에 일부 시위대가 저지선을 뚫고 의회에 난입하자 경찰이 발포하며 20명 안팎의 사망자가 나왔다.
케냐인권위원회는 AFP 통신에 "나이로비에서 19명을 포함해 케냐 전역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2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고, 케냐의사협회는 로이터 통신에 "나이로비에서 경찰 발포로 최소 23명이 숨지고 30명이 총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나이로비의 케냐타국립병원 관계자는 "부상자 160명을 치료 중"이라고 집계했다.
루토 대통령이 의회로 돌려보낸 수정안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의회는 21일 안에 대통령이 제안한 수정안대로 의결할 수도 있고 이를 수용하지 않고 원안대로 재의결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도 시위대는 법안의 일부 수정이 아닌 폐기를 주장하며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시위 주최 측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목요일에 만나요'라는 뜻의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섞은 해시태그(#tutanethursday)를 올리며 27일 전국적인 평화 행진을 예고했다.
루토 대통령은 전날 밤 대국민 연설에서 "조직적인 범죄자들에 의해 선량한 시민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권리가 침해됐다"며 "반역적인 안보 위협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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