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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만에 입 연 최태원…'질적 성장' 의지 밝히며 정면돌파 나서
SK그룹 전반 위기감 고조에 구성원·이해관계자 달래기
'편파적 판결'에 유감 표명…이동통신 사업 특혜 시비에 "법원이 곡해"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혼 항소심 판결 나흘 만인 3일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 판결이 단순히 총수 개인의 사생활 이슈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SK그룹 전반에 대한 위기감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재판부가 판결 과정에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유입과 정경유착을 명시하면서 그룹의 성장과 역사가 부정당했다고 판단, 더 이상의 이미지 훼손을 막고 흔들림 없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 "개인적인 일로 심려끼쳐 죄송"…'질적 성장' 의지 강조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수펙스추구협의회에 참석해 개인적인 일로 구성원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사과하고, 그룹 경영과 국가 경제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나흘 만에 처음이다.
앞서 지난달 30일 판결 당일에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최 회장은 재판 기간 회사와 사회 구성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면서 "재판의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는 입장을 내놓기는 했다.
이번 판결로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 주가가 연일 급등하는 등 SK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구성원과 이해관계자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로 SK그룹이 현재 추진 중인 그룹 포트폴리오 점검과 최적화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했다.
특히 첨단 반도체 등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이번 건으로 최 회장의 대외 활동이 위축되거나 연구개발(R&D)이나 시설 투자 등이 적기에 이뤄지지 못하며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 회장이 이날 회의에서 내실 경영에 기반한 '질적 성장' 의지를 밝히고 반도체 등 디지털 사업 확장을 통한 인공지능(AI) 리더십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SK그룹은 이달 25일을 전후로 확대경영회의를 열어 계열사별로 진행 중인 '리밸런싱' 작업을 점검하고, 향후 과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확대경영회의는 이천포럼(8월), CEO 세미나(10월)와 더불어 SK그룹 최고 경영진이 모여 경영 전략을 논의하는 중요 연례행사로, 이 자리에서도 이번 판결에 따른 향후 대응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SK CEO들 "재판부, 부정한 자금으로 성장한 것처럼 곡해"
이날 회의에 참석한 SK 최고경영자(CEO)들은 항소심 판결이 SK그룹의 가치와 역사를 훼손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에 적극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온 1991년 선경건설(SK에코플랜트 전신) 명의 약속어음과 메모를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이 최 회장의 선친인 최종현 전 회장에게 흘러 들어갔고,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의 성장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정유와 섬유로 출발한 선경그룹(SK그룹의 전신)이 도약한 계기가 제2이동통신 사업 진출이고, 여기에는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1988년 결혼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역할이 주효했다는 일각의 시선이 재판부에 의해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이로 인해 SK그룹뿐 아니라 재계 전반의 이미지 훼손도 불가피한 상태다.



이에 일부 CEO들은 이날 회의에서 "노태우 정부 당시 압도적인 점수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고도 정부의 압력 때문에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SK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는데 마치 정경유착이나 부정한 자금으로 성장한 것처럼 법원이 곡해했다는 것이 SK CEO들의 의견이다.
앞서 재판부는 SK의 태평양 증권 인수와 한국이동통신 진출 등과 관련, "최종현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사돈 관계를 보호막·방패막으로 인식하고 모험적이고 위험한 경영을 감행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며 SK그룹 성장에 노 전 대통령의 유·무형적 기여가 있었다고 명시했다.
당시 SK의 태평양 증권 인수 자금 출처에 대해 논란이 제기됐지만 세무조사와 자금출처 조사 등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SK가 이동통신사업에까지 뛰어든 것 자체에 사돈 관계가 뒷받침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최종현 선대회장이 생전 이동통신사업 특혜 시비에 시달려 온 것은 사실이다.
앞서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4년 그룹의 정보통신사업 진입을 준비하며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고 이후 선경정보시스템(1990년 5월), 선경텔레콤(1991년 4월) 등을 잇달아 설립했다.
1992년 1월 신년사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해왔다"며 "정보통신 사업을 다음 사업 영역으로 선정해 그룹의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며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SK는 1992년 노태우 정부 당시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다가 당시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 등의 반발로 1주일 만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인 1993년 말 사업자 선정 절차가 다시 시작됐고, 정부는 특혜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선정 절차를 위임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최 회장은 입찰을 포기했고, 대신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 지분 23%를 확보하며 경영권을 인수했다.
hanajj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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