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IRA 대처하는 배터리·소재업계…'흑연 탈중국' 열차 탔다
배터리 3사·포스코퓨처엠 등 공급망 다변화 박차
'값싼 중국산' 탈피 시 공급 비용↑…"세제혜택 등 정책 지원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김아람 기자 = 국내 배터리 및 배터리 소재 업계가 핵심 소재인 흑연의 대(對)중국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앞으로 2년간 분주하게 움직일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급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할 배터리에 사용된 흑연에 대해서는 외국우려기업(FEOC)에서 조달해도 2026년 말까지 문제 삼지 않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FEOC는 사실상 중국 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앞으로 2년간 '중국산 흑연'으로 만든 배터리를 허용한다는 의미이다.
국내 업계는 2년이라는 시간을 번 동시에 2년 안에 중국을 대체할 흑연 공급망 구축이라는 당면 과제를 안게 됐다. 이른바 흑연의 탈중국화다.
◇ 배터리 3사, 호주·美 업체와 손잡고 천연흑연 조달
12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음극재 생산량의 96%를 중국이 차지할 정도로 음극재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2022년 IRA 시행 이후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는 배터리 광물 공급망 다변화에 힘써왔지만, 흑연의 경우 유독 중국산 비중이 커 빠른 '탈중국'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배터리 3사는 '중국산 흑연'이 허용되는 2026년 말까지 호주, 미국 등의 업체와 손잡고 중국 외 세계 각지에서 흑연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낼 계획이다.
우선 LG에너지솔루션은 호주 흑연업체 시라와 계약을 맺고 흑연을 공급받기로 했다.
시라가 확보한 흑연 광산과 미국 공장을 통해 생산된 원재료를 배터리 제조에 활용하면 IRA상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된다.
지난 2년 10월 맺은 업무협약(MOU)에 따라 시라가 오는 2025년부터 미국 루이지애나주 공장에서 양산하는 천연흑연 2천t 공급을 시작으로 협력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다.
시라는 세계 최대 흑연 매장지로 꼽히는 아프리카 모잠비크 광산을 소유해 운영 중이며 루이지애나주에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흑연의 배터리 내 원가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 시 받는 보조금을 고려하면 배터리 업체에 흑연의 탈중국은 불가피한 선택지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앞으로 미국, 유럽연합(EU) 등 배터리 산업 권역별 요구에 맞춰 흑연 공급망 다변화 노력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 역시 지난해 시라와 루이지애나주 공장에서 천연흑연을 공급받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삼성SDI는 오는 7월까지 시라의 천연흑연을 자사 배터리에 탑재하는 실증을 진행하며, 검증을 거쳐 오는 2026년부터 흑연을 연간 1만t 공급받는다.
SK온도 지난 2022년 시라와 천연흑연 수급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작년 1월 미국 흑연 생산업체 우르빅스와도 음극재 공동개발 협약을 맺은 바 있다.
아울러 지난 2월에는 미국 음극재 파트너사 웨스트워터 리소스와 천연흑연 공급 계약을 맺고 미국산 천연흑연을 확보하기로 했다.
웨스트워터 리소스는 2027∼2031년 미국 앨라배마주 정제 공장에서 생산한 천연흑연을 SK온 미국 공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 포스코퓨처엠, 인조흑연 경쟁력↑…아프리카서도 천연흑연 공수
포스코그룹 배터리 소재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음극재의 핵심재료인 인조흑연도 국내 유일하게 포항 공장에서 만들어낸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음극재 시장에서 포스코퓨처엠은 공동 9위의 시장 점유율(2.3%)을 기록했다.
포스코퓨처엠은 향후 2년을 기회이자 도전으로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2년 뒤 미국의 '중국산 흑연 배제'가 확실해진 가운데 전 세계 음극재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대체재로 포스코퓨처엠이 본격적으로 떠오를 것이란 기대감도 깔렸다.
이에 포스코퓨처엠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주춤한 상황에서도 계획된 소재 분야 투자를 이어갈 방침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3월 호주 흑연업체 시라로부터 음극재 제조용 모잠비크산 천연흑연을 대량으로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당장 내년부터 연간 최대 6만t의 천연흑연이 도입된다.
포스코그룹 차원에서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와 탄자니아에서 각각 광산 공동 투자계약과 흑연 장기 공급계약을 맺어 천연흑연을 조달할 계획이다.
◇ '값싼 중국산' 탈피 시 공급비용 상승…"세제혜택 등 정책지원 필요"
탈중국 흑연 공급망 구축 관건은 '비용'이다.
중국산 흑연은 원료, 물류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비용이 싸다. 중국 대신 멀리 아프리카, 호주 등에서 흑연을 조달하려면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인조흑연의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과 더욱 비교된다.
포스코홀딩스 김준형 친환경미래소재총괄은 지난해 포스코퓨처엠 사장을 맡았던 당시 기자 간담회에서 "음극재 매출의 주력은 인조흑연이지만, 국내에서 사업하기가 어렵다. 전기료가 ㎾(킬로와트)당 170원 정도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경쟁인 중국은 전기료가 ㎾당 50원가량이어서 중국과 경쟁하기가 진짜로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책금융 등을 통해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낮은 전기료, 저리 대출 등 국가적인 지원으로 무장한 중국 업체와 경쟁하려면 업계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8일 열린 민관 합동회의에서 핵심광물 공급망 다변화와 안정적인 관리를 강조하면서 "한국 배터리·자동차 업계 간,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부는 중국 공급망 탈피에 9조7천억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경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정부 차원에서 세제 혜택이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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