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징집연령 18세인데…'병력 부족' 우크라, 25세 하향 딜레마
27세→25세 이상 징집 확대 법안, 반대 여론에 의회서 몇 달째 계류
여론 저항에 정치권도 머뭇…젤렌스키도 "매우 민감한 사안"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면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징집 대상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여론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 의회에는 징집 대상 연령을 현행 '27세 이상'에서 '25세 이상'으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수개월째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개정안에는 징집 거부자에 대한 처벌 강화 내용도 담겼다.
법 개정으로 인해 늘어날 수 있는 병력 규모는 현재 우크라이나가 처한 병력 부족 수준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내부 여론의 저항이 거세 그마저도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주요 지지자 중 한 명인 페디르 베니슬라브스키 여당 의원은 WSJ에 "우리는 징집 대상 연령을 25세 이상으로 낮추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이는 인기가 없는 결정"이라며 "동원 가능한 인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에 비해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은 우크라이나는 최근 극심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가 매주 공격에 병력 수천 명을 투입하고 매달 3만여명의 신규 병력을 보충하며 인해전술을 펼치는 것에 반해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초창기 자원한 병력으로 2년 넘게 버티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년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군인 약 3만1천명이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실제 전사자 규모는 그보다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부상자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만 명에 달하며, 남아있는 병력도 고령이거나 긴 전쟁에 지친 채로 부족한 포탄으로 겨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병력 부족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온 우크라이나의 높은 징집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됐으나, 여론의 반대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18세 이상이 되면 자원입대는 가능하지만, 27세가 될 때까지는 국가에서 전쟁에 강제로 동원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서방 국가에서 최소 18세 이상부터 징집이 가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욱이 전쟁 초기 자원입대가 이어졌던 우크라이나에서는 최근 들어 대부분이 전장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여전히 러시아와의 전쟁 자체는 지지하고 있으나, 지난해 우크라이나군이 벌인 대대적인 반격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영토를 탈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고 사기가 크게 떨어진 탓이다.
23세 아들을 둔 크리스티나 몰리추크(47)는 WSJ에 "우리나라가 전쟁을 하고 있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나는 엄마이기도 하다"며 "내 아들을 전쟁에 보내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온 미국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우크라이나의 징집 연령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 여론을 의식한 우크라이나 정치권은 징집 제도에 나서서 손을 대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병력 부족을 인정하면서도 의회 주도로 추진되어온 징집 연령 하향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징집 대상 연령을 '25세 이상'으로 낮추는 법안은 앞서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 의회를 한차례 통과했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을 하지 않아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법안을 지지했던 야당 의원 로만 코스텐코는 그 이후로 징집 연령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징집 제도 개편을 위한 법안이 의회에 제출됐다가 대중의 반대로 철회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징집 대상 연령을 25세로 낮추는 것을 "아마" 지지할 수도 있다며 1년 내로 50만명을 추가 징집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이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발언 이후 3개월 가량이 지난 현재까지 이에 대해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대통령실 대변인은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WSJ은 전했다.
코스텐코 의원은 (징집 연령을 낮추는 것은) "인기가 없는 결정이지만, 전시 상황에서 이러한 인기 없는 결정을 하는 것은 대통령의 임무"라며 "이에 대한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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