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사망' 나발니 타살 의혹 고개…"의문 드는 건 명백"
나발니 측 생전에 "수감 중 무언가에 중독됐을 우려" 언급
러 "사망 전날 정상적 영상진술"…"급작스러운 외부요인 사망" 의혹도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16일(현지시간) 옥중 사망한 것을 두고 타살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직 당국의 사인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이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배후로 의심되는 의문사 사건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단순 사망이 아니라는 의문이 당장 제기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나발니 사망을 두고 애도 메시지를 내면서 '푸틴 정권 책임론'을 언급했다.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던 그의 급작스러운 옥중 사망을 자연사나 돌연사 정도로 믿기 어렵다는 뉘앙스가 서려 있는 반응이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이날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나발니의 사망 사고를 두고 "러시아가 책임이 있으며 미국은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회의에 참석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도 "푸틴 대통령이 나발니의 사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 출연해 "러시아 정부가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해를 끼친 추악한 역사를 고려하면 나발니의 사망을 두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명백한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의 언급은 러시아에서 반정부 인사들의 의문사가 숱하게 이어졌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2006년 내부 비리를 폭로했던 러시아 연방보안국(FSG) 전직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홍차를 마신 뒤 사망한 사건을 비롯해 지난해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가 전용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까지 푸틴 정권을 배후로 의심하는 의문사는 끊이지 않았다.
나발니 역시 과거 독극물 테러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2020년 8월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죽음의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검사 결과 옛 소련 시절 개발된 군사용 신경작용제 노비촉 계열 독극물이 검출돼 푸틴 대통령이 배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를 일축했다.
이날 나발니의 사망을 두고도 푸틴 정권과 연계한 타살 의혹이 또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옥중 사망 사건을 고의적 살인과 연결하려면 수감자를 서서히 숨지게 하거나 급격한 신체 변화나 상해를 일으켜 사망하게 할 가능성을 따질 필요가 있다.
전자의 경우, 나발니 측에서 이미 지난해 그 가능성을 우려했었다.
나발니의 대변인인 키라 야르미쉬는 작년 4월 나발니가 심한 위장 통증을 겪은 사실을 알리면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나발니가 무언가에 중독돼 꾸준히 건강이 악화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 측은 최근 나발니의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날 영상으로 나발니의 재판 진술을 받은 블라디미르시(市) 지방법원은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나발니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주장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진술했다"고 전했다. 전날까지도 적극적인 발언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정상적으로 보였다는 취지다.
이는 오히려 나발니가 서서히 숨졌다기보다 급작스러운 외부 요인에 의해 사망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뒤따른다. 이미 겪은 바 있는 독극물 테러 등을 옥중에서 당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러시아가 사인 조사를 마치고 뚜렷한 증거와 함께 조사 결과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나발니의 사망을 둘러싼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러시아에서 발생한 의문사 사건을 여러 차례 바라본 국제사회는 조사의 투명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설사 러시아 정부가 타살이 아니라는 과학적 증거를 공개해도 국제사회의 러시아에 대한 불신이 이미 커진 터라 의혹을 잠재우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나발니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그의 사인은 이미 객관적 사실의 영역을 벗어난 탓이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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