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물가 '마지막 고비' 걱정…한은 상반기 금리인하 난망
한·미 모두 이른 완화의 부작용 경계…시장 조기인하 기대와 상충
한은 22일 기준금리 동결 유력…전문가들 "하반기 인하"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월 31일(현지시간) "아직 갈 길이 더 남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한국은행 역시 당분간 인하에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두 나라 중앙은행 모두 고물가 시기의 마지막 국면에서 너무 일찍 통화정책 완화로 돌아섰다가 물가 안정기 진입 자체가 무산되는 이른바 '라스트 마일 리스크'를 경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연준이 이날 '연내 완화'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만큼 미국은 이르면 2분기, 한국의 경우 이를 지켜본 뒤 하반기께 금리 인하를 시작할 가능성이 커졌다.
◇ 파월 연준 의장 "연내 완화 적절하지만 3월은 일러"
연준은 1월 30∼31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5.25~5.50%로 동결했다. 여전히 한국(3.50%)보다는 2.00%p 높은 수준이다.
연준은 앞서 지난해 6월 약 15개월 만에 금리 인상을 멈췄다가 7월 다시 베이비스텝(0.25%p)을 밟았지만, 이후 9월과 11월, 12월에 이어 이날까지 네 차례 연속 금리를 묶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최근 물가 상황에 대해 "인플레이션 진전에 고무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우리는 승리를 선언할 시점이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더 남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2%)으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려면 연속되는 증거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3월 조기 인하 가능성 관련 질문에도 "두고 봐야겠지만 FOMC가 3월 회의 때 (금리를 인하할 만큼) 확신에 도달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부정적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이날 파월 의장은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견해뿐 아니라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적 시각도 곳곳에서 내비쳤다.
그는 "지난 6개월간(작년 하반기) 인플레이션 데이터가 충분히 낮다"며 "올해 어느 시점에서 긴축 정책을 완화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연내 금리를 낮추겠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한 셈이다.
◇ 이창용도 "적어도 6개월 인하 쉽지 않아"…'라스트마일 리스크' 경고
연준의 네 차례 연속 금리 동결과 파월 발언 등으로 미뤄 한은도 오는 22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통방) 회의에서 8연속 동결을 결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11일 열린 새해 첫 금통위 통방 회의 의사록을 보면, 현재 금통위원들도 대부분 연준과 마찬가지로 "물가가 2%에 안착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11일 동결 결정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연준의 물가상승률 변화에 따른 금리 결정, 유가 안정 여부, 소비가 경기 예측대로 갈지, 무엇보다 물가 경로가 예상대로 갈지 봐야 한다"며 "적어도 6개월 이상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까지 수 개월간 이어진 '추가 긴축' 언급은 금통위 의사록에서 사라졌다.
금통위도 경기·성장 부진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비롯한 고금리 부작용 등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 전환(피벗)을 고민할 때가 됐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다만 한은이나 미국 연준이나 조기 인하에 선을 긋는 것은, 피벗을 지나치게 서두르다가 물가가 다시 뛰는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물가 안정기로의 진입에 실패한 사례를 보면, 고물가 시기의 라스트 마일에 대한 부주의에 기인한 경우가 다수"라며 미국(1973년), 프랑스(1974년), 그리스(1973년), 덴마크(1973년) 등의 사례를 제시됐다.
◇ 전문가들 "미국 연준 6월께 인하하면 한은도 하반기 낮출 것"
현재 상당수 경제·금융 전문가들도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을 하반기 이후로 보고 있다.
연준의 동향 등으로 미뤄 미국의 피벗이 일러야 5월 또는 6월에나 가능하고, 한은은 연준의 인하를 확인한 뒤에야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소비가 하반기로 갈수록 부진할 가능성이 큰 데다, 이때쯤 서비스 중심으로 물가 상승률 하락도 뚜렷해지면서 한은의 정책 대응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도 "내수 부진과 부동산 PF 등에 따른 유동성 우려를 고려해 한은이 하반기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며 "미국 연준의 6월 인하를 전제로 한은의 7월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노코미스트 역시 하반기 인하를 점쳤다. 그는 "부동산 PF 문제로 올해 건설투자 둔화, 부동산시장 침체 위험이 커져 내수 경기가 지속적으로 억눌릴 것"이라며 "이는 수출경기 회복 효과를 상쇄하면서 한은의 올해 성장 전망 경로(2.1% 성장률)에 하방 리스크가 점차 고조되고, 이에 대한 통화정책 대응 필요성도 2분기 이후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shk999@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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