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분열의 한복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 올해는 다를까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솔직히 우리는 변화를 거의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매일 발생하는 어린이 사망자 수로 측정됩니다."
제임스 엘더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대변인이 12일(현지시간)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전쟁으로 황폐화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인도적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며 내놓은 말이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벌이는 전쟁의 현장에서 민간인 희생을 금지하는 국제인도법이 매일 같이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하고 인질로 끌고 간 하마스나 무차별적인 보복 공습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생존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모습이 국제사회가 정해놓은 최소한의 인도적 약속마저 안중에 없어 보인다는 비판이다.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한 가자지구의 상황은 국제사회의 분열상을 드러내는 단면처럼 여겨진다.
인류 공통의 약속 대신 목전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이해관계가 맞는 나라끼리 세를 규합해 서로 맞서다 보니 작년 10월 이후 2만3천명이 넘는 민간인 사망자가 나온 가자지구에서 평화를 모색하기가 어려워진 모습이다.
국제기구의 조율 기능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보와 인권, 환경, 무역 등 분야에서 국제사회가 규약을 만들어놓아도 구심력을 지닌 집행기구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처럼 탈세계화 경향이 짙어지는 현실 속에서 국제기구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을 터다.
각국은 기후변화를 심각한 인류 공통 현안이라고 인식하면서도 탄소감축 목표량 설정 문제를 두고는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
보호주의를 경계하고 글로벌 다자 무역을 복원하자는 명분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미·중 패권 경쟁 속에 글로벌 무역 균열의 가속도는 좀처럼 제어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15일부터 닷새간 스위스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 연례총회(WEF·다보스포럼)가 열린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리창 중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전 세계 정상급 인사 60여명을 포함해 정·재계 및 학계 리더 2천80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한다.
각국의 리더가 인류 공통의 현안을 논의하며 해법을 찾아보자는 자리다.
만 2년을 채워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2개의 전쟁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열리는 만큼 글로벌 리더들이 구상하는 위기 타개책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지구 표면온도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상황에서 획기적인 기후변화 해법을 찾아낼지, 인공지능(AI)이 허위 정보를 양산하지 않으면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할 방법은 무엇인지 등도 대표적인 의제로 꼽힌다.
다보스포럼은 논의 가치가 큰 이슈로 가득 채워지겠지만 성공을 거둘지 장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작년 1월 다보스포럼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을 딛고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면서 관심을 끌었지만 '우크라이나를 변함 없이 지원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이정표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올해 다보스포럼의 대주제는 '신뢰의 재구축'이다. 지정학적 갈등과 기후위기 등 인류 현안을 풀어내려면 분열을 지양하고 무너져 내린 국제적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반영된 타이틀이다.
지난해 대주제는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었다. 사실상 올해와 큰 틀에서는 방향은 다르지 않다.
참석자들이 자기 이해에 매몰되지 않고 얼마나 진정성 있게 해법을 강구하느냐에 따라 올해 행사의 성과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의 겨울 휴양지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이 겉으로는 협력을 이야기하는 유력 인사들의 사교 모임이라는 핀잔을 또 듣기엔 지구촌의 현실은 너무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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