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모욕→'성하' 극존칭…아르헨대통령, 교황 고국방문 초청
현지 언론들 "개혁안 지지 끌어내려는 목적" 분석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대선 후보 시절 교황에게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험한 말을 서슴없이 퍼부었던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어조를 바꿔 자국 출신인 교황의 고국 방문을 공식 초대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은 11일(현지시간) "밀레이 대통령이 아르헨티나 국민을 대표해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를 초청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공식 소셜미디어에는 밀레이 대통령이 관련 서한에 서명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함께 게시됐다. 대통령 옆에는 여동생이자 '실세'로 꼽히는 카리나 밀레이 비서실장이 함께했다.
초청 서한에서 밀레이 대통령은 "교황 성하께서는 아르헨티나에 오기 위해 초청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만, 교황께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우리 국민의 광범위한 열망을 전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10여년 간 고국을 찾지 못했던 교황은 앞서 지난해 4월 현지 일간지 라나시온과의 인터뷰에서 "2024년에 아르헨티나를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87세가 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만, 갈수록 악화하는 건강 문제로 신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교황은 10대 시절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고 최근 수년간은 휠체어, 지팡이에 의존해야 할 만큼 무릎에 심한 통증을 겪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의 교황 초청은 몇 달 전 대선 후보로서 보였던 언행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그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각종 유세에서 교황을 헐뜯으며 '악마', '악의 축', 'X덩어리', '망할 X의 사회주의자' 등 막말을 퍼부었다.
당시 기득권을 상대로 한 혐오에 가까운 정서를 표출했던 밀레이 대통령은 교황이 빈민층 지원과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회 정의' 교리를 설파한다는 이유로 맹비난했다는 게 대체적인 현지 시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대통령 당선 후에는 어조를 부드럽게 바꾸며 교황을 예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클라린 등 현지 언론은 교황 초청에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회에 대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각종 '밀레이 표' 법안이 여소야대 구도의 의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데다 법원에서마저 일부 시행에 제동을 건 상황에서, 교황 방문을 통해 사회 통합을 모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배경에서다. 아르헨티나 국민 90% 이상은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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