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도요타 자회사마저 인증 부정…'장인정신' 日제조업 신뢰 흔들
작년 히노 이어 올해 다이하쓰까지 20∼30년간 데이터 조작 사실 드러나
단기간 개발 성공 경험이 '실패 불인정' 압박 작용하며 품질인증 부정 부메랑으로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일본 제조업체를 대표하는 도요타자동차의 자회사에서 수십 년간 대규모 품질 부정이 자행됐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도요타뿐 아니라 다른 주요 대기업에서도 잇달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면서 '모노즈쿠리'(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제조문화)에 기반한 일본 제조업 전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도요타의 자회사인 다이하쓰공업은 지난 20일 충돌시험과 연비시험 등 품질 인증 취득 과정에서 다수 부정행위가 발견됐다면서 국내외에서 전 차종 출고를 중단했다.
이어 26일부터 내년 1월 말까지 일본 내 4개 전 공장의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다이하쓰는 소형차 전문회사로 지난해 전 세계 공장에서 170만여 대를 생산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일본에서 제조했다.
다이하쓰가 충돌시험과 관련한 품질 인증 취득 과정에서 6개 차종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지난 4월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후 전문가로 구성된 제3자위원회를 설치해 다른 부정이 없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일본 국내외 64개 차종에서 174건의 부정이 확인됐으며 이런 부정이 1989년부터 35년간 지속돼 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제3자위원회는 다이하쓰가 충돌시험뿐 아니라 배기가스와 연비시험 등도 조작해 왔다고 발표했다.
충돌시험에서는 운전석 측 시험 결과를 사용해야 하는 곳에 조수석 측 결과를 사용하는 등 인증을 얻기 위해 다양한 부정이 자행된 사실이 드러났다.
제3자위원회 보고서에는 도요타 자회사에서 왜 이런 일이 버젓이 수십 년간 계속될 수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다이하쓰 직원 설문조사 결과가 포함돼 있었다.
다이하쓰 직원들은 기존보다 기간을 단축해 개발에 성공한 경험이 오히려 이후 단기간에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이 됐다고 밝혔다.
모든 과정에서 실패 없이 한 번에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가혹한 단기간 개발 계획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개발의 마지막 과정인 인증에서 불합격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강한 압박을 느껴 결국 조작의 유혹에 빠지게 된 것이다.
2016년 다이하쓰를 완전 자회사로 만든 도요타는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다이하쓰는 도요타에 소형차 공급을 늘리게 됐고 그것이 또한 개발과 인증 현장에서 부담을 늘렸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사과하며 "그룹 전체가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에도 도요타그룹의 상용차 전문 제조업체 히노자동차가 20년 동안 엔진 배출가스와 연비를 조작한 것으로 확인돼 관련 엔진을 탑재한 차량 생산이 금지됐다.
2001년 도요타의 자회사가 된 히노도 일본에서 판매한 차량용 엔진의 배출가스와 연비와 관련해 조작된 데이터를 제출해 생산에 필요한 인증을 얻었다.
일본 정부는 자료 조작이 드러난 히노의 엔진을 사용하는 8개 차종에 대해 도로운송차량법에 따라 '형식 지정'을 취소했다.
형식 지정은 자동차의 성능을 유지하고 대량생산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허가하는 조치로 1951년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지정이 취소된 것은 처음이다.
현지 방송 NHK는 "일본 자동차회사는 고품질의 차를 적절한 가격에 판매하며 세계에서 지위를 확립해 왔다"며 "이번 문제로 일본 차 전체의 신뢰가 갈림길에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단 자동차회사뿐 아니라 일본의 다른 주요 제조업체에서도 수십년간 이어진 부정이 잇달아 발각되고 있다.
미쓰비시전기는 지난해 원전이나 철도회사 등에서 사용된 자사 변압기에 40년간 부정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미쓰비시전기도 검사 과정에서 데이터를 거짓으로 써넣는 방법으로 납품처를 속여왔다.
일본제강도 지난해 발전소 터빈과 발전기의 축으로 사용되는 로터 샤프트 등 두 가지 제품에서 부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역시 검사 데이터를 거짓으로 기재하는 방법으로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24년간 고객이 원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제품을 판매해 온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검사를 적절하게 하지 않아도 품질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잘못된 정당화 등이 부정이 잇따르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조직적인 부정이 반복된다면 품질로 인정받았던 일본 제조업체들도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 제조업체의 잇따른 품질 부정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있더라도 이를 일본 업체들처럼 밝히지 않고 오히려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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