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개국 고위급 3천명 만난 재계, 유치 못했지만 新시장 발굴
5대 그룹 중심돼 전방위 유치전…사업 협력기회·공급망 확대 성과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장하나 이신영 기자 =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가 불발됨에 따라 그동안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온 재계는 아쉬움이 큰 분위기다.
비록 부산엑스포 유치는 불발됐지만, 유치 활동 과정에서 새로운 글로벌 시장을 발굴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하는 등 소정의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12대 주요 그룹은 지난해 6월 민간유치위원회 출범 이후 18개월 동안 총 175개국의 정상과 장관 등 고위급 인사 3천여명을 만나 엑스포 유치 활동을 해왔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개최한 회의만 총 1천645회로, 이중 절반에는 주요 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급이 직접 참여했다.
특히 삼성과 SK, 현대차, LG, 롯데 등 주요 5대 그룹이 전체 교섭 활동의 89.6%를 차지했다.
각 그룹은 국제박람회기구(BIE) 182개 회원국을 비즈니스 연관성 등을 기준으로 나눠 맡아 밀착 마크했다. 여기에는 그동안 한국과 교류가 많지 않았던 나라들도 포함됐다.
삼성은 네팔과 라오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소토 등을, SK는 아프가니스탄과 아르메니아, 리투아니아, 몰타 등을 맡았고, 현대차는 페루, 칠레, 바하마, 그리스 등을, LG는 케냐와 소말리아, 르완다 등을 각각 담당했다. 롯데는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을 대상으로 유치전을 펼쳤다.
공동유치위원장을 맡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겸 SK그룹 회장과 SK그룹 CEO들이 직접 방문했거나 국내외에서 면담한 나라만 180여개로, 그동안 가진 각국 정상과 BIE 대사 등 고위급 인사와의 개별 면담 횟수는 약 1천100회에 달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삼성 사장단, 지역 총괄장·법인장 등도 총 50여개국을 상대로 600회 이상의 미팅을 진행하며 교섭 활동을 벌였다.
이 회장은 지난 7월 피지, 통가, 사모아를 방문하고 8월 독일, 10월 스웨덴·영국을 찾아 총리와 미팅하는 등 매달 해외 출장을 통해 부산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달 초에는 태평양도서국포럼(PIF)에서 2박 3일간 총 10개국 태평양도서국 정상 및 장관들과 만나 부산엑스포 지지를 당부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종 투표가 이뤄지는 파리에서 송호성 기아 사장 등 주요 임원들과 마지막까지 유치 활동에 전념했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주 사업보고회 일정을 일부 조정하고 임원 인사를 앞당겨 보고받은 뒤 파리에서 막판 엑스포 유치전에 함께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6월 30개국 대사를 부산으로 초청해 부산을 알렸고 교토 소비재 포럼에도 참석하는 한편, 베트남 정·재계 인사들과도 만났다.
비록 2030 부산엑스포 유치는 불발됐지만, 지난 1년 6개월 동안 기업들이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전방위 유치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산업 전반의 글로벌 전략을 확장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번 엑스포 유치 활동을 통해 사업 협력 기회 창출, 새로운 시장 발견, 공급망 확대 등 괄목할 만한 경제외교 결실도 있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엑스포와 기업인은 숙명적인 하나의 운명적 결합"이라며 "미국·중국 갈등 등 지정학적 문제로 글로벌 시장이 쪼개지는 가운데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지금, 엑스포는 세계 시장을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엑스포 유치전은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에 편중됐던 한국 기업의 시야를 중남미, 아프리카, 태평양도서국 등으로 확장하는 기회가 됐다.
엑스포 유치전을 계기로 그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관심을 갖지 않았던 국가를 직접 방문해 그 나라 정상 및 경제계 인사와 교류하며 시장 진출, 사업 협력 등을 모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숨은 표가 있는 곳에 숨은 시장이 있었다"며 "해외에 아직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있음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특히 각국의 산업적 요구(니즈)와 각 기업이 보유한 기술, 노하우를 상호 매칭한 '맞춤형 지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업 기회'와 '새로운 글로벌 시장'을 발굴한 사례가 다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SK그룹의 경우 지난달 파리에서 연 CEO 세미나에서 세계 각국과 합의한 '윈윈' 협력모델 등 엑스포 유치 활동 중 창출한 '뜻밖의 사업 기회' 사례를 공유했다.
한 CEO는 "EU 소속 일부 국가들이 전통·신재생 에너지 관련 사업 역량과 기술을 보유한 SK와 협력을 희망해 관련 공동개발협약(JDA) 또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서두르는 동남아 선도 국가들도 SK와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수소, 전기차 배터리 등 분야의 사업 협력 가능성에 높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디지털 경제 전환 구축을 추진하는 국가와 인공지능(AI), 5G 등 정보통신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고, 아프리카에서 희토류 자원 확보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광물자원 개발 기회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삼성은 부산엑스포의 강점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청소년 창의력 양성 프로그램인 '솔브 포 투모로우', 청년 취업 지원 기술교육 프로그램인 '삼성 이노베이션 캠퍼스' 등 삼성이 추진해 온 사회공헌활동을 각국의 유치 교섭활동에서 활용했다.
사모아, 통가, 피지, 동티모르, 필리핀, 쿡 제도, 투발루 등에서 삼성 사회공헌활동을 새롭게 도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삼성의 사회공헌 가치를 전파하고 미래세대 육성을 위한 지속가능한 활동을 펼쳐 호응을 얻었다. 삼성은 아프리카 레소토에서 삼성 제품을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서비스센터를 신규 오픈하기도 했다.
대한상의가 엑스포 유치 활동의 일환으로 개설한 솔루션 플랫폼 '웨이브'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온라인에 지어진 133개 국가관에는 신재생에너지 전환, 친환경 정책 전환, 식수 부족, 식량 위기 등 당면 과제와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 자국민의 공감 등이 공유됐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총수뿐 아니라 경영진도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각국의 정상 등 주요 인사들을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 네트워크를 쌓은 만큼 향후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번 엑스포 유치 활동을 통해 개별 기업의 주요 경영진이 전 세계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며 구축한 현지 네트워크는 향후 비즈니스 진행 시 큰 자산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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