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10년 칼끝 사정이 향한 곳…반부패 그리고 '정적 제거'
블룸버그 "올들어 고위관료 41명 부정부패혐의 조사…2014년 이후 최대 규모"
시진핑, 반부패 사정으로 상하이방·공청단 세력 제거 후 '마오쩌둥 길' 택해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 사정 당국이 올해 들어 고위 관료 41명을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는 2014년 이후 최대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중국 내 반(反)부패 사정 사령탑 격인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가 지난 1월 1일부터 이달 8일까지 발표한 걸 블룸버그통신이 분석한 결과치다.
여기엔 지난 5월과 7월 각각 해임된 친강 전 외교부장과 리상푸 전 국방부장은 포함되지 않았고 11월 초순까지 집계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전체적으로는 41명을 초과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2012년 10월 제18차 공산당 전국 대표대회(당대회)를 계기로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모두 거머쥔 시진핑은 집권 직후부터 사정의 칼을 휘둘러왔다.
중국이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해 30여년 개혁개방으로 고도 경제 성장을 해온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해 반부패 사정이 불가피하다는 명분을 들었다.
무엇보다 뇌물 수수와 청탁 문화가 중국 미래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면서 부정부패 척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때 나온 단어가 '파리'와 '호랑이'다. 거물 부정부패 혐의자를 호랑이로, 지역의 당정 관료를 파리로 칭한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이 같은 작업은 반부패 사정 목적 이외에도 정적 제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강도 높은 반부패 사정 작업이 10년 넘게 지속됐는데도 부정부패 혐의자가 더 늘어난 데 의구심을 표시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중앙기율검사위의 발표 내용을 보면 사실상 시진핑 집권 첫해인 2013년 고위 관료 21명을 시작으로 2014년(41명), 2015년(37명), 2016년(29명), 2017년(32명), 2018년(28명), 2019년(22명), 2020년(20명), 2021년(25명), 2022년(34명)까지 한해에 최소 20명 이상이 처벌을 받았다.
집권 1기(2012∼2017년)에 사정 대상자가 많았고, 시진핑이 당의 암묵적 계율인 '2기 초과 연임 금지' 규정을 깨고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3기 연임을 강행한 2022년에 상대적으로 고위 관료 처벌이 많았던 점이 눈에 띈다.
올해 부정부패 혐의로 조사받는 고위 관료가 늘어난 건 사정당국이 은퇴한 고위 관료 17명을 조사 대상에 넣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통상 중국에선 부정부패 고위 공직자의 경우 퇴진하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아 왔으나, 이런 암묵적 관례를 깨고 사정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외교가에선 시진핑의 반부패 사정을 두고, 9인 또는 7인의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들이 권력을 분점한 집단지도체제를 '1인 체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에 저항 또는 반발 세력을 처단하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절대권력자였던 마오쩌둥이 1976년 사망한 이후 덩샤오핑 주도로 집단지도체제가 정착돼 연임 규정을 지켰던 장쩌민·후진타오와는 달리 시진핑은 '마오쩌둥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자신의 집권 이전엔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편입으로 개혁개방을 통한 고도성장이 가능했지만, 미중 대결 구도의 상황에선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기존 시장경제 체제보다는 사회주의로 더 좌클릭한 중국특색사회주의 깃발을 들고, 경제·외교·군사·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맞선 '대국굴기'로 중국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의 이런 시도는 집권 초기부터 태자당-상하이방-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라는 중국 내 삼각 권력 구도 속에서 난관에 봉착했고, 그 과정에서 시진핑은 반부패 사정을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썼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공산당 혁명 원로의 자제가 주축인 태자당 소속 시진핑은 집권 이후 장쩌민 계열의 상하이방, 후진타오·리커창 중심의 공청단과 힘겨루기를 해왔다.
중앙기율검사위 이외에 공안과 검찰, 법원 권력까지 쥔 시진핑은 집권 초기 눈엣가시였던 저우융캉을 비롯해 범 상하이방 인사들을 대거 부패 혐의로 낙마시켰다.
중국 정계에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막후 영향력을 바탕으로 '지분'을 행사해온 상하이방은 결국 작년 11월 30일 장쩌민 사망과 함께 사실상 몰락했다.
공청단 역시 태두라고 할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2012년 퇴임 후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진핑을 견제할 힘을 상실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당시 상무부총리로서,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어갈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리커창은 시진핑의 견제로 실권을 잃은 총리로 전전하다 임기를 마친 뒤 지난달 27일 사망했고, 이를 계기로 공청단도 설 자리를 상실한 듯하다.
이와 관련, 미국 싱크탱크 스템슨센터의 윈쑨 동아시아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은 "3기 집권에 성공한 시진핑이 이제 양보 없이 자신의 어젠다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는 그러나 "(중국 내에서) 시진핑에 대한 좌절감이 클 것 같다"면서 반부패와 투쟁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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