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아르메니아 자치세력, 협상 타결 못해…"곧 다시 회담"(종합)
아르메니아계 "아제르 측이 휴전합의 파기"…아제르 "완전한 거짓"
아제르 "연료 등 제공 의향"…아르메니아 총리 "러시아, 사전에 왜 안 나섰나"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와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무력 충돌을 벌였던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과 휴전 상태로 지역 재통합 협상에 나섰지만 난항을 겪은 모습이다.
아제르바이잔은 21일(현지시간) 자국 중부 도시인 예블라흐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 대표들과 지역 재통합 문제 등을 놓고 회담을 벌였지만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자국 통신사인 아제르탁에 이날 회담이 종료됐다고 전하면서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을 통합할 계획을 제시했다. 양측은 곧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와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은 무력 충돌 발생 후 하루 만에 휴전에 합의한 상태였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지난 19일 지뢰폭발로 자국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일대에 포격을 가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국제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일부로 인정되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지원을 받는 자치군이 활동하면서 무력 분쟁이 자주 발생해왔다.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군사시설만 타격했다고 주장했지만, 민간인 피해가 속출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가운데 양측은 전날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지역 재통합 문제를 협상하기로 했다.
이날 협상을 전후해 아제르바이잔이 적대행위 중단 약속을 어겼다는 주장이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으로부터 나왔다. 이날 오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총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아제르바이잔 측은 "우리가 약속을 깼다는 건 완전한 거짓"이라며 부인했다.
협상장에서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은 이 같은 휴전 약속 파기 논란과 관련해 확실한 안전 보장을 아제르바이잔 측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치세력 지도자 삼벨 샤흐라마니안 측의 다비드 바바얀 고문은 로이터 통신에 "우리는 군사행동 중단에 합의했지만 최종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많은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협상에서는 수개월간 봉쇄 상태에 놓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인도주의적 지원 방안도 논의됐다. 이 지역의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을 외부와 연결해 줄 통로는 5㎞ 길이의 '라친 통로'가 유일한데, 작년 말부터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이 통로를 막아섰다.
양측은 이날 봉쇄 해제에 합의하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에게 긴급한 연료와 인도주의적 물품,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아르메니아는 이번 사안을 놓고 아제르바이잔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전날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 측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휴전 합의 선언문 초안 작성에 아르메니아는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분리주의자들이 통제하는 지역에 아르메니아 군대가 없다"고 밝혔다.
파시냔 총리는 이날 자국 독립기념일 연설에서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조국이 생존을 보장하려면 평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이번 휴전 합의를 두고 영토 주권을 되찾았다며 사실상 '승리 선언'을 한 상황에서 파시냔 총리가 미온한 태도를 보이자 아르메니아 여론은 악화하는 모습이다.
전날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이 집회를 열고 정부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동족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며 반발했다. 시위대 일각에서는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파시냔 총리는 이처럼 상황이 전개된 점을 두고 러시아 측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오후 TV 연설에서 "향후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민간인에는 직접적인 위협이 없다는 게 내 평가"라며 "만약 필요하다면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 내 아르메니아인 4만 가구가량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어 "(이번 협상을 중재한) 러시아 평화유지군은 아제르바이잔 측이 공격하기 전에는 왜 협상에 나서지 않았느냐"며 "왜 그들은 평화 유지 기능을 사전에 수행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 영토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사전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크렘린궁은 무력 충돌이 발생한 뒤 러시아 평화유지군은 양측과 소통하며 협상을 중재했으며 아르메니아계 주민 5천명에게 대피처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전날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주둔 중인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공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을 두고 러시아 측에 사과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 평화유지군 사망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통화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 내 아르메니아계 주민의 권리와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말을 건넸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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