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냐 러시아냐…신흥국 '줄타기 전략'에 고민 깊어지는 서방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서방과 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굳어지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진영이 신흥 경제국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신흥 경제국들의 확실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 통과를 여러 차례 이끌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최근 몇 달간 러시아를 공개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약화하고 있다는 게 일선 외교관들의 진단이다.
많은 신흥 경제국이 전쟁 피해와 관련해 러시아에 배상을 요구하고 러시아 지도부를 겨냥한 국제 재판소를 만들자는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지원 국가들의 제안에 반대 입장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달 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적으로 규탄하는 내용이 빠진 공동 성명이 채택된 것을 두고서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서방과 이에 거리를 둬온 일부 G20 회원국 간 균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한 개발도상국도 거의 없으며, 러시아가 중립적인 제3국을 통한 무역으로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는 것도 미국과 동맹국들에 여전히 큰 도전이 되고 있다고 WSJ은 짚었다.
그간 인도를 비롯해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등 거대 신흥 경제국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리처드 고원 유엔국장은 WSJ에 "쉽게 이기고 쉽게 지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많은 비(非)서방 국가들이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계산'(triangulate)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명확하게 어느 편에 서지 않은 채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음 주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도 거대 신흥 경제국들의 우선순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닌 글로벌 불평등과 부채 탕감이며 이 문제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지길 원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WSJ은 신흥 경제국들이 이번 유엔 총회에서 서방 국가들이 전 세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2030년까지 추진하기로 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약속을 이행하도록 압박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달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신흥경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 6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WSJ은 브릭스의 회원국 확대를 두고 "여러 해에 걸쳐 영향을 미칠 국제정치 개편"이라고 짚었다.
브릭스 회원국인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얀 테쇼는 일부 서방 관리들이 미국과 유럽을 향한 일부 지역의 적대감과 국제무대에서 자국의 이익 등을 주장하는 브라질, 남아공 같은 국가들의 의지를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전직 독일 국방관리인 그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로 불리는 많은 국가가 (대러 전선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것에 대해 서방이 놀랐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WSJ에 말했다.
ICG의 고원 국장은 "미국과 동맹국들은 일부 비서방 강대국들을 완전히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였다"면서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끝나야 하는지에 대한 국제적 관점은 어떤 해결책으로 최종 귀결이 되든 그 틀을 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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