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언론에 방어적인 러…폴리티코 특파원 "10년만에 쫓겨나"
"비자 갱신 거부 등 개별적 방식으로 조용히 단속 중"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러시아 당국이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서방 언론인들을 비자를 갱신하지 않는 방식 등으로 조용히 단속하고 있다고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폴리티코 소속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현지에서 10년가량 활동해온 네덜란드 출신 언론인 에바 하르톡은 이날 기고문 형식의 보도를 통해 "지난달 러시아 외무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비자 갱신이 안 될 것'이라고 알려왔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가 들은 설명은 '관련 당국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인데, 통상 보안 당국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라며 "6일 내로 (러시아를)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하르톡은 당국의 통보 직후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나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핀란드 등 매체의 기자들도 저마다 다른 사유로 체류를 거부당하며 사실상 추방되는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하르톡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한 2014년 이후 서방과의 관계가 급격히 냉랭해지면서 언론인들에게 요구하는 각종 서류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외무부가 1년마다 갱신하는 외신 기자 체류허가 같은 것들이다.
또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외국인 기자에게 지문 채취, 흉부 엑스레이 촬영, 정신과 의사 상담 등을 포함한 건강검진 절차를 의무화하는 등 이같은 경향은 더욱 눈에 띄게 강화됐다고 한다.
다만, 이같은 규제는 번거롭기는 해도 해를 끼치지는 않는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2021년 여름 영국 BBC 방송의 특파원 세라 레인스포드가 "안보 위협"으로 지목돼 입국 금지되고, 몇달 후 네덜란드 매체의 톰 베닝크 기자가 행정 위반을 사유로 쫓겨난 것도 대대적인 추방보다는 드문 현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올 3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가 냉전 이후 전례가 없는 간첩 혐의로 체포됐을 때는 이같은 생각이 깨졌다고 하르톡은 설명했다.
그는 이에 대해 "모든 특파원들에 대한 경고의 신호였다"고 주장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게르시코비치 체포 한달 전 외국인 언론인에 대한 '최혜대우 체제'가 종식됐다며 "우리와 우리나라, 우리 국민을 무례하고 비하적인 방식으로 대한다면 러시아에서 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르톡은 이제까지 스위스 공영방송 SRF의 루치아 치르키, 익명의 프랑스 기자, 핀란드의 아리아 파나넨 등도 타의로 러시아를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에 남아있는 한 기자는 "일부를 쫓아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겁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르톡은 덧붙였다.
d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