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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도로 '탁신의 시대'로…20년 앙숙 군부와 '적과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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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도로 '탁신의 시대'로…20년 앙숙 군부와 '적과의 동침'
탁신 전 총리 귀국…탁신계 정당, 보수 세력과 정부 구성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탁신이 돌아왔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15년간의 해외 도피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고, 탁신계 정당은 2014년 쿠데타로 잃은 정권을 되찾았다.
태국이 돌고 돌아 도로 탁신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형국이다.
탁신이 다시 태국 땅을 밟은 22일 의회에서 세타 타위신 후보가 총리로 선출돼 탁신의 손아귀에 있는 프아타이당이 차기 정부를 이끌게 됐다.
탁신 가문과 태국 정치권에는 한 편의 정치 드라마 같은 일들이 이어진 날이었다.

◇ 탁신의 부활…9년 만에 탁신계 정당 집권
탁신계 정당은 2014년 쿠데타 이후 이어진 사실상의 군부 시대를 끝내고 다시 권력을 쥐게 됐다.
통신 재벌 출신인 탁신은 2001년 총선에서 총리 자리에 올랐고, 2005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가족회사인 친코퍼레이션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17억달러에 매각한 일 등으로 반탁신 운동이 확산했다.
탁신은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 끝에 2006년 9월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고, 2008년 부패 혐의 재판을 앞두고 해외로 도피했다.
탁신은 해외에서도 태국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레드 셔츠'로 불리는 농민과 도시 빈민층의 지지로 탁신계 정당은 선거에서 승승장구했다.
2008년에는 탁신의 매제 솜차이 옹사왓이 총리로 선출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집권당 해체 판결로 3개월 만에 사퇴했다.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은 프아타이당 소속으로 2011년 태국 첫 여성 총리가 됐지만, 2014년 헌법재판소가 권력 남용을 이유로 해임 결정을 내리면서 쫓겨났다.
정치적 혼란 속에 2014년 5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그는 2019년 총선을 거쳐 9년간 총리 자리를 지켜왔다.
2000년대 태국 정치는 이처럼 탁신 세력과 군부로 대표되는 반(反)탁신 세력이 양분해왔다.
탁신 진영 정권은 번번이 군부 쿠데타와 법원 판결 등으로 무너지고, 다시 선거를 통해 부활하는 흐름이 반복됐다.



◇ 군부 진영과 손잡은 탁신계…'반쪽' 정권 교체
결과적으로 탁신계 정당이 정권을 되찾은 셈이기는 하지만, 친군부 정당과 공동으로 정권을 구성함에 따라 '반쪽짜리' 정권 교체가 됐다.
탁신 가문은 군부에 의해 정권을 잃고 해외로 쫓겨나다시피 했지만, 집권을 위해 원수와도 같은 군부와 손을 잡았다.
프아타이당이 주도한 이번 연립정부에는 2014년 쿠데타의 핵심 인물들과 연결된 군부 진영 정당이 모두 포함됐다.
루엄타이쌍찻당(RTSC)은 2014년 쿠데타의 장본인 쁘라윳 총리가 지난 총선에 총리 후보로 나선 당이다. 팔랑쁘라차랏당(PPRP)은 쁘라윳의 군 선배이자 군 실세로 알려진 쁘라윗 웡수완 부총리가 대표인 당이다.
탁신계와 군부 진영의 연합은 지난 총선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선거 직전까지도 탁신계와 군부 진영의 대결 구도 속에 프아타이당의 승리가 점쳐졌으나, 왕실모독죄 폐지 등 급진적 공약을 내건 야권의 전진당(MFP)이 제1당에 오르는 이변이 벌어졌다.
기대와 다른 결과를 받은 프아타이당은 일단 전진당이 주도한 민주 진영 야권 연합에 참여했으나,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가 의회 총리 선출 투표를 통과하지 못했다.
2차 투표 무산 등 우여곡절 끝에 전진당의 집권이 좌절되고 정부 구성 주도권을 넘겨받은 프아타이당은 "쿠데타 세력과 협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등 군부 정당과 손잡았다.
군부가 2017년 개정한 헌법에 따라 현재 태국 총리 선출에는 군정이 임명한 상원 의원 250명과 총선에서 선출된 하원 의원 500명이 참여한다.
하원에서 과반 지지를 얻어도 보수 기득권 세력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집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 '군부 대 탁신'에서 '보수 대 개혁' 구도로
결국 프아타이당과 군부 진영 모두 달갑지 않은 파트너와 어쩔 수 없이 한배를 타게 됐다.
프아타이당으로서는 민주 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의 지위를 전진당에 내주며 위기를 맞게 됐다. 또 탁신 전 총리의 귀국을 위해서도 반드시 집권이 필요했다.
군부 등 보수 세력으로서는 왕실모독죄 개정 등 개혁 정책을 내세운 전진당의 집권을 막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전진당이라는 '공동의 적' 등장에 탁신계와 군부 보수 세력이 연합한 정치 게임의 결과로 해석된다.
윤진표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서로의 정치적 속셈이 작용해 적과 동침하게 된 것"이라며 "집권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게 태국 정치"라고 말했다.
그는 "태국 정치 지형이 탁신 대 반탁신에서 보수 대 개혁 구도로 바뀌게 됐다"며 "변화와 개혁을 원한 민심은 묵살되고 신보수 정권이 출범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수코타이 탐마티랏대의 유타폰 이시라차이 교수는 "선거에서 보수 세력이 패한 이후 전진당에 맞서 싸울 가장 강력한 당은 프아타이당"이라며 "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속담이 있다"고 말했다.
극심한 혼란 끝에 차기 정부가 출범하게 됐지만, 태국 사회의 불안 요인은 남아 있다. 정권 내 권력 다툼과 반탁신 세력의 반발, 제1당에 오르고도 야당으로 전락한 전진당 지지자들의 시위 등으로 정국 혼돈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doubl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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