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하는 러시아 루블화…지난해 3월 이후 화폐가치 최저 수준(종합)
러 루블화 방어에도 올들어 30% 급락…"인플레 가능성, 러 경제 타격"
러 중앙은행, 오늘 임시회의 열어 기준금리 인상 논의
(뉴욕·서울=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권수현 기자 =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년 넘게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17개월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국제 외환시장에서 루블화 환율은 한 때 1달러당 100루블 고지를 넘기기도 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인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오전 루블화 가치 하락이 수출 감소와 수입 수요 증가에 따른 것이라며 재정 안정성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에는 다음날인 15일 오전 임시회의를 열어 현재 8.5%인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깜짝 발표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금리가 오르면 화폐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루블화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발발한 이후 폭락했다가 러시아 당국의 개입에 힘입어 가치를 회복한 적이 있다.
당시 러시아 당국은 주민들에 대한 환전 금지와 외국인 주식 매도 금지, 에너지 기업들의 루블화 보유 의무화 등의 조치를 도입했다. 루블화의 수요를 늘려 환율을 방어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같은 러시아 당국의 적극적인 규제와 함께 고유가 등 러시아 경제에 유리한 주변 환경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루블화의 가치는 달러당 50루블 선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상황이 급변해 루블의 가치는 30% 가까이 급락했다. 전 세계 국가 중에서 러시아보다 화폐 가치가 더 많이 떨어진 국가는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 튀르키예뿐이다.
러시아 당국은 루블화 가치 하락의 원인으로 수출 감소 등 교역 조건 악화를 지목하며 환율이 다시 안정화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유가 상승 등 유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무역을 통해 발생한 수익은 지난해에 비해 85%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의 지출 증가도 루블화 폭락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지출을 대폭 늘리면서 통화량 증가로 루블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당국이 루블화 가치 하락을 유도했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영국 BBC방송은 보도했다.
컨설팅사인 매크로어드바이저리의 크리스 웨퍼 파트너는 러시아 당국은 지난해 루블화 가치를 가능한 한 높게 유지하는 데에 경제정책 우선순위를 뒀지만, 이제는 정부 지출 균형을 위해 통화 가치를 평가절하하기로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웨퍼는 "(루블화 가치 하락은) 위기가 임박했다기보다는 관리들이 내린 결정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루블화 폭락이 당장 공황으로 이어질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피폐해진 러시아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는 루블화 가치 하락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전하면서, 환율 문제가 러시아 경제 전반의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짚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6.5%로 내다봤다. 루블화 가치 하락은 수입 상품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고, 물가 전체가 자극받는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루블화 약세가 단기적으로는 석유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해 정부의 전쟁 지출 자금을 대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자칫 1998년 금융위기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러시아가 국채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서 루블화 가치가 70% 이상 폭락했다.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전시 상황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더욱 부각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러시아 남성들의 징병으로 빈 노동 현장을 채워온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루블화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 대신 다른 국가로 발을 돌리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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