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은행 내부통제 사고…'CEO까지 문책' 입법 속도 낸다
정부 입법 대신 의원 입법 추진…시행 시기 앞당길 듯
금융당국 대책 '무용론' 비판도…은행 허위 보고에 점검 강화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채새롬 기자 = 금융당국이 대형 금융사고나 내부 직원 일탈이 반복될 경우 최고경영자(CEO)까지 책임을 물리는 입법 작업에 속도를 낸다.
최근 은행권에서 수백억원대 횡령 및 고객 계좌 무단 개설 등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가 잇따르자 법 시행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은 최근 쏟아낸 내부통제 강화 대책에도 금융회사들의 허위 및 늑장 보고가 이어지자 '무작위 점검' 등을 통해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 무력화된 내부통제가 대형 사고로…지배구조법 탄력
13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부통제 관련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통상 정부 입법보다 의원 입법이 법안 처리 속도가 빠르고 시행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최근 은행권 대형 비위가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옴에 따라 내부통제 강화 '속도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내부통제 관련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해두는 '책무 구조도' 도입이 핵심이다.
특히 책무 구조도에는 CEO의 책임도 명시된다. 대형 금융사고나 횡령 같은 조직적·반복적 사고 시 CEO도 문책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등만 명시돼 있고 임원별 구체적 책무가 정해져 있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개정안은 임원별 책무를 구체적으로 지정해 문서화하도록 했다.
이러한 책무 구조도가 미리 도입됐다면 최근 발생한 대형 금융 사고에도 더 명확한 책임 규명이 가능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경남은행에서 500억원대 횡령이 발생한 데 이어 KB국민은행 직원들은 업무상 알게 된 고객사들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27억원 규모의 주식 매매 차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은행 중 처음으로 시중은행 전환을 노리고 있는 DGB대구은행은 고객 몰래 문서를 꾸며 증권계좌 1천여개를 개설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모두 내부통제 시스템을 통해 걸러지지 못하고, 외부 민원이나 수사를 통해 덜미가 잡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만약 책무 구조도가 사전 도입됐더라면 최근 터진 사건들에 대해 내부통제 실패 책임을 더 간명하고 명확하게 물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여부만을 근거로 제재를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내부통제를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조치를 했는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을 따져볼 수 있다"며 "훨씬 상식적인 수준의 '내부통제 실패'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체면 구긴 금융당국…금융사 허위보고에 검증 절차 강화
금융당국 관리 감독 체계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내부통제 강화 대책을 쏟아냈지만 은행권 내부통제 시스템이 사실상 마비됐었다는 점이 연달아 드러나면서 금융당국 역시 책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들의 허위·거짓 보고가 많았다는 판단 아래, 보고 검증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횡령 사고가 발생한 경남은행은 내부통제 제도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금융감독원에 허위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감원은 작년 우리은행 횡령 사고 이후 모든 은행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 고위험 업무를 장기간 담당한 직원이 있는지를 보고하도록 했는데, 경남은행은 '없다'고 보고했다.
경남은행에서 562억원을 횡령하고 도주한 이모(50)씨는 경남은행에서 PF 관련 업무만 15년간 담당했다.
대구은행은 일부 직원들이 임의로 고객 증권계좌를 개설했다는 민원을 지난 6월 30일 접수해 자체 검사에 착수하고서도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일 "보고된 내용에 오류가 있을 경우 의미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크로스 체크(교차 점검)할 수 있는지를 점검 중"이라며 "감독당국의 관행 측면에서 개선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금융사가 거짓 보고를 할 가능성까지 고려하지 않고 점검 결과를 받았지만, 앞으로의 검증 절차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에 자체 점검을 지시하고 나서도 금감원이 체크를 한 번 더 해보자는 취지"라며 "보고가 이상한 경우 세부 자료를 다시 한번 청구하거나 무작위로 점검하는 방안 등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필요한 경우 추가 개선안을 마련해 작년에 마련한 내부통제 혁신 방안에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작년 11월 은행의 준법 감시부서 인력 및 전문성 확충, 장기 근무자 감축, 사고 예방조치 운영기준의 재설계 등을 골자로 한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은행들은 올해 1분기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각사 내규에 반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금융당국이 운영하던 제도를 짚어보고 개선할 부분은 같이 개선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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