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올해 서울 아파트 시장을 흔든 '큰 손'은 누구?
상반기 외지인 매입 비중 '역대 최대'…거래량·가격 상승에 영향
30대 매입 비중도 1년 반만에 최대…전국 아파트는 30대가 40대 처음 앞질러
"집값 하락, 대출 확대에 작년 대기수요 '상급지'로 이동 증가"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모(38)씨는 최근 회사와 가까운 서울 마포구에 중형 아파트 한 채를 매입했다.
지난해 집값 하락과 금리 인상으로 집을 사기가 부담스러웠는데 연초 급매물이 나오고 가격이 떨어져 매수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김씨는 "15억원 초과 대출도 풀렸고, 3월 이후 대출 이자도 하향 안정세를 보여 매수를 결정했다"며 "결혼 후 줄곧 서울 입성을 원했는데, 현 세입자의 전세 만기가 끝나면 입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주택 매매시장이 지난해 거래 절벽을 딛고 회복세를 보인 가운데, 상반기 서울 아파트 외지인 매입 비중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상반기 30대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중도 1년 반만에 가장 높았다.
최근 서울 아파트 거래량과 가격 상승세에 '30대'와 '외지인'이 큰 몫을 한 것이다.
전국 아파트 역시 30대의 매수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40대를 앞질러 30대가 전국구 '큰 손'으로 떠올랐다.
키워드는 집값 하락과 대출 완화였다.
◇ 상반기 서울 아파트 외지인 매입 역대 최대…30대가 1위
2일 연합뉴스가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거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상반기(1∼6월) 서울 아파트 신고 건수는 1만7천509건으로 이 가운데 외지인 매입 비중은 26.1%(6천436건)에 달했다.
상반기에 팔린 서울 아파트 4건 중 1건 이상을 서울 거주자가 아닌 타지역 거주자가 원정 매입한 것으로, 주택 거래량 조사가 시작된 2006년 이후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비중이다.
지난해 하반기(23.7%)에 비해서도 2.4%포인트 높은 수치다.
월별로는 급매물이 팔리기 시작한 지난해 12월 35.9%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뒤 올해 1월 29.1%, 4∼5월에 24%대로 주춤해지다 6월 들어 다시 28.5%로 상승했다.
구별로는 관악구의 외지인 비중이 45.1%로 가장 높았고 강북구 38.6%, 마포구 33% 순이었다.
강남4구 중에서는 송파구와 강동구 아파트의 외지인 비중이 각각 29.4%, 28.8%로 30%에 육박했고, 강남구는 지난해 하반기 10.1%에 불과했던 외지인 비중이 올해 상반기 24.8%로 높아져 눈길을 끌었다.
이에 비해 서울 거주자의 상반기 서울외 수도권과 지방 아파트 원정 매입 비중은 5.4%로 작년 하반기(5.5%)보다도 감소했다.
외지인의 서울 아파트 매입은 늘었는데, 서울 사람들의 타지역 아파트 투자는 줄어든 것이다.
거주지와 같은 구(區)의 아파트 매입은 감소했다.
2015년 상반기만 해도 56.5%에 달했던 서울 동일 구내 아파트 매입 비중은 2017년 하반기 47.3%로 내려온 뒤 올해 상반기 37.2%로 더 하락했다. 반기 기준 역대 최저다.
주로 동일 구내 주거 이동보다 타지역 간 이동이 많았던 것이다.
서울 아파트 시장의 또 다른 큰 손은 30대였다.
올해 상반기 30대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중은 32.9%로 2021년 하반기 이후 1년 반 만에 가장 높았다.
30대가 서울 아파트 시장에 큰 손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2019년 하반기부터다. 그 전까지는 40대의 비중이 더 높았지만 2019년 하반기에 처음 30대(29.8%)가 40대(29.2%)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더니 2020년부터 그 격차가 커졌다.
집값이 다락같이 올랐던 2021년 하반기에는 서울 아파트의 30대 매입 비중이 36.4%로 26.6%였던 40대와 격차가 10%포인트 가까이 벌어졌다.
당시 집값이 수직 상승하고, 청약 가점제 강화로 분양 아파트의 당첨권에서 멀어져 불안한 30대들이 대거 갭투자(전세 끼고 매입)와 빚투자(빚 내서 매입)에 나선 영향이다. 당시 만들어진 신조어가 '패닉바잉', '영끌족'이다.
30대, 40대 비중은 지난해 집값 하락과 금리 인상 여파로 하반기에 각각 24.2%, 23.5%를 기록하며 근소한 차이로 줄었다가 올해 상반기에 각각 32.9%, 27.9%로 격차가 다시 커졌다.
눈에 띄는 것은 30대의 구매 파워가 올해 들어 전국적인 현상으로 번졌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전국에서 팔린 아파트 20만3천437건 가운데 30대 매입 비중은 26.8%(5만4천445건)로 40대(25.9%)를 앞질렀다. 2019년 이 조사가 시작된 이후 반기 기준으로 처음이다.
◇ 집값 하락 틈타 갈아타기 늘어…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 확대도 영향
올해 상반기에 외지인과 30대 매입 비중이 확대된 이유가 뭘까.
일단 지난해 말 서울 아파트값이 크게 하락하면서 서울 입성을 노려온 외곽의 대기 수요자들이 급매물 사냥에 나섰기 때문이다.
아파트값이 고점 대비 30∼40%가량 떨어진 데다 15억원 초과 고가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이 풀리고, 올해 초에는 연 4% 금리의 특례보금자리론이 판매되면서 무주택자와 갈아타기 수요의 주택 구매 욕구가 되살아난 것이다.
특히 집값 하락기에 상급지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눈에 띄게 많았다.
예를 들어 광명시에서 양천·영등포구로, 의정부에서 노원구로, 하남시에서 강동구 등지로 옮겨오는 것이다.
서울 내에서도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에서는 마포·성동구 등 도심으로, 마포·강동구에서는 송파구로, 송파구에서는 강남·서초구 등지로 주거 상향 목적의 이동이 두드러졌다.
마포구 아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올해 상반기 외지인 매입 비중이 높아진 데는 그간 전용면적 84㎡ 기준 20억원을 호가하다가 급매물이 15억∼16억원대로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매수세가 유입됐기 때문"이라며 "수도권 인근이나 강북 외곽에서 자기 집을 팔고 오는 갈아타기 수요가 많았고, 마포 아파트를 매도한 일부는 강남으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강동구 고덕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상반기 이곳 아파트를 팔고 나간 사람의 다수는 잠실 쪽 급매물을 사서 이사했다"며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등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법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다주택자의 유입은 쉽지 않고, 대부분 상급지로 이전하려는 갈아타기 수요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이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을 자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21∼27%에 달했던 서울 아파트 갭투자 비중은 올해 상반기엔 1월 18%에서 3·4월에 각각 13%로 감소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5월과 6월의 갭투자 비중은 각각 9%, 6%다.
여기에다 3월 들어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고, 특히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해 대출을 확대한 것도 30대의 매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R114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대출 문턱이 낮아지고, 서울 아파트값은 다시 오르니 작년에 집을 사지 않고 관망했던 30대가 다시 매수를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세사기, 역전세난 여파로 연립·다세대 등 빌라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것도 30대의 아파트의 선호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7월 들어 감소하는 거래량…하반기엔 관망할 수도
다만, 올해 하반기에도 계속 외지인과 30대의 매수가 증가 추세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일단 7월 들어 서울 아파트 거래량 증가세가 6월 대비 주춤한 상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6월 아파트 거래량은 이달 1일 현재 5월(3천424건)보다 많은 3천841건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8개월 연속 증가세다.
그러나 7월 들어서는 1일 현재까지 신고 건수가 1천856건으로, 전월 동기 기준 2천건 넘게 신고됐던 6월 거래량에 조금 못 미친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주간 신고되는 거래량으로 볼 때 7월 아파트 거래량은 6월보다 작은 5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7∼8월은 휴가철 등 계절적 비수기인 데다 일부 지역에선 상반기에 아파트값이 많이 올라 추격 매수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통상 외지인 원정 투자나 30대는 집값이 오를 때 매수세가 두드러졌다. 하반기 집값 추이에 따라 당분간 관망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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