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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남아공의 딜레마와 푸틴의 강요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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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남아공의 딜레마와 푸틴의 강요된 선택
4년만에 대면 개최 브릭스 정상회의 홀로 화상 참석하기로
코로나19 기간 제외 직접 참석하지 않는 첫 브릭스 정상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상호 합의에 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8월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실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이른 오후 사전 공지 없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언론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 영장이 발부된 푸틴 대통령을 두고 수개월째 골머리를 앓던 남아공의 딜레마가 풀린 순간이었다.
ICC는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어린이들을 불법적으로 이주시키는 등의 전쟁범죄 혐의로 푸틴 대통령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올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의 신흥 경제 5개국) 의장국으로서 다음 달 22∼24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정상회의를 여는 남아공은 푸틴 대통령을 진작부터 초청한 상태였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경우 ICC 회원국으로서 체포 영장 집행에 협조할 의무가 있는 남아공은 이후 안팎으로부터 다양한 압박을 받았다.
제1야당인 민주동맹(DA)은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체포하겠다고 선언하라는 '희한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중진 의원 4명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남아공이 브릭스 정상회의에 푸틴 대통령의 '무사 참석'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 아프리카성장기회법(AGOA) 대상국 제외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의 AGOA를 통해 남아공이 받은 혜택이 작년에만 4천억 랜드(약 28조원) 상당에 달한다는 점에서 실로 위협적인 압박이었다.
주남아공 미국 대사는 이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아공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례적으로 주재국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남아공은 극단적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던 옛 소련 시절부터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지원한 러시아와 공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관계를 차치하고서라도 초청받아 자국을 방문한 외국의 국가원수를 체포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게 인지상정이다.
폴 마샤틸레 남아공 부통령이 최근 현지 매체 뉴스24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푸틴을 체포할 수 없다"며 "그것은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고서 체포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남아공은 정상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하는 방법,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대리 참석, 정상회의 장소를 ICC 회원국이 아닌 중국으로 옮기는 방안 등 여러 대안을 제시했으나 회원국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그는 토로했다.
문제의 핵심은 푸틴 대통령이 애초부터 표면적으로는 화상 참석이나 라브로프 장관의 대리 참석을 거부하고 직접 참석을 원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딜레마에 처한 남아공의 라마포사 대통령은 물론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브릭스의 다른 회원국 정상들도 내심 푸틴의 불참을 바랐을 것이라는 게 현지 외교가의 중론이다.
푸틴 대통령이 오면 브릭스의 외연 확장이나 탈달러화 등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보다 그의 체포 여부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될 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푸틴으로서는 '스트롱맨'의 체면을 구길 수 있는 화상 참석 제안을 섣불리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라마포사의 솔직하고 진정 어린 설득 노력에 시진핑 주석까지 힘을 보태며 푸틴이 결국 마음을 돌렸다는 게 현지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아닐 수클랄 주브릭스 남아공 대사는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3월 이후 라마포사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수시로 통화를 했다"며 "중국과 인도, 브라질 정상과도 각각 여러 차례 통화하며 관련 상황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이 남아공 정부의 딜레마를 이해했고, 이 문제로 정상회의를 망치기 싫었던 것으로 이해한다"며 "라마포사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라고 덧붙였다.
남아공 현지 주간지 메일앤가디언(M&G)은 지난 21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라마포사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푸틴 대통령의 설득을 부탁했다고 보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푸틴 대통령이 애초부터 8월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할 생각이 없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암살 위협도 공공연한 마당에 수많은 국가의 영공을 통과해야 하는 장거리 비행을 감수하며 아프리카 남단의 남아공까지 오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점에서다.
아울러 지난달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이 푸틴의 마음을 돌리게 한 배경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현지의 한 외교 소식통은 "푸틴이 다른 회원국 정상들의 설득에 못 이기는 척하며 화상 참석 수용 의사를 밝혔을 수 있다"며 "이 과정에 아무도 직접 언급하진 않았더라도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은 암묵적 명분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푸틴 대통령이 8월 브릭스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하기로 하면서 남아공 정부는 정말 커다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 같다.
다만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그 이유가 ICC의 체포 영장이었든,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내 불안정이었든, 정말 브릭스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배려였든 간에 일종의 강요받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고 브릭스 정상회의에 정식 회원국의 국가 원수가 직접 참석하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번 정상회의는 2019년 11월 브라질에서 열린 제11차 정상회의 이후 4년 만에 대면 방식으로 열리는 회의다. 그리고 러시아는 차기 의장국이다.
hyunmin62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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