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경제(백신 입찰 담합해 나랏돈 폭리…제약사·도매…)
백신 입찰 담합해 나랏돈 폭리…제약사·도매상 과징금 409억원
7년여간 7천억 규모 정부 백신 입찰서 담합…낙찰률 100% 웃돌아
공정위, 검찰 요청에 뒤늦게 조사…이미 1심서 벌금형 선고
(세종=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 독감·간염·결핵·자궁경부암 백신 등 정부가 비용을 대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백신 조달 입찰에서 투찰가격 등을 담합해 폭리를 취한 제약사와 의약품 도매상들에 4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글로벌 백신 제조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6개 백신총판, 25개 의약품도매상 등 32개 사업자가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사업자별 과징금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 3억5천100만원, 녹십자[006280] 20억3천500만원, 보령바이오파마 1억8천500만원, SK디스커버리[006120] 4억8천200만원, 유한양행[000100] 3억2천300만원, 한국백신판매 71억9천500만원 등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은 질병관리청, 국방부 등이 조달청을 통해 발주한 24개의 NIP 백신 품목에 관한 170개 입찰에서 낙찰 예정자와 들러리를 합의하고 실행했다.
초기에는 의약품 도매상끼리 담합했으나 정부가 2016년부터 제3자 단가 계약 방식(정부가 전체 물량의 5∼10% 정도인 보건소 물량만 구매)을 정부 총량 구매 방식(정부가 연간 백신 물량 전부 구매)으로 바꾸자 글로벌 제약사가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고 백신 총판이 낙찰받았다.
백신 입찰 시장 내 담합 관행이 워낙 고착화·만연화한 탓에 전화 한 통만으로 들러리를 섭외할 수 있었고, 들러리 사는 입찰 가격을 사전에 일러주지 않아도 알아서 적당히 높은 가격을 써내 역할을 수행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이들은 유찰되거나 제3의 업체가 낙찰된 23건을 제외하고 147건을 계획대로 낙찰받았으며 이 중 117건(80%)은 낙찰률(기초금액 대비 낙찰금액 비율)이 100% 이상이었다.
이는 통상적으로 최저가 입찰에서 낙착률이 100% 미만인 것에 견줘볼 때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공정위는 밝혔다. 입찰 담합을 통해 더 비싼 값에 정부에 백신을 팔았다는 의미다.
담합이 이뤄진 170건 입찰의 관련 매출액은 7천억원에 달한다. 다만 입찰 담합으로 인해 제약사·도매상 등이 벌어들인 부당 이득은 산정하기 어렵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등 3개사는 2011년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제재받은 이력이 있음에도 재차 이 사건 담합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칫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검찰 수사를 통해 실상이 드러났다.
공정위는 2019년 한국백신 등의 백신 관련 독과점 지위 남용 행위를 적발해 과징금 9억9천만원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는데, 검찰이 담합 혐의를 추가로 잡아내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한 것이다.
검찰은 이후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보령바이오파마, 유한양행, SK디스커버리, 광동제약[009290] 등 관련 회사를 담합 혐의로 재판에 넘겨 이미 벌금형이 선고됐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광주 교복 구매 입찰 담합, 가구 입찰 담합 등 공정위가 조사하지 않았거나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한 검찰의 고발 요청이 반복되는 것과 관련해 "검찰과 업무 협조를 잘하고 있다"며 "전속고발제의 큰 틀이 잘 지켜지면서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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