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학원 이어 라면도…'경제검찰' 역할론 속 기대·우려 교차
존재감 커진 공정위…일각선 조사권 오남용 우려도
(세종=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 금융·통신에 이어 사교육 광고, 라면 등 식품 물가까지 경제 전반에 걸쳐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을 주문하는 정부 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행정기관인 만큼 정책 방향에 따라 특정 분야의 법 위반 행위를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공정위 조사권이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 공정위 독립성·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6일 관가에 따르면 공정위는 국민 생활에 밀접한 주요 식품의 가격 추이 등을 전반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업들이 밀 가격이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라면값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한 것과 관련, 한덕수 국무총리가 원가가 내려도 비싼 가격이 유지되는 제품에 대해 공정위가 담합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 따른 것이다.
추 부총리는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며 "이 문제는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에 과징금 등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공정위가 식품 업계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간 공정위는 민생 분야의 담합 등 반칙 행위를 중점적으로 감시하겠다고 하면서도 '물가 당국'으로 비치는 것은 경계해왔다.
공정위 본연의 역할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촉진하는 것이지 물가 관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명박 정부 때 재임했던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례적으로 물가 안정을 강조했는데 당시 '물가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행정력을 오남용하면 시장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은 왜곡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공정위는 최근 불거진 사교육 이권 카르텔 논란에서도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사교육 카르텔'에 대한 엄정 대응을 선언한 교육부와 보조를 맞춰 사교육을 조장하는 거짓·과장·기만 광고를 단속할 방침이다.
이와 별개로 금융·통신업권에 대한 대규모 담합 조사도 진행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통신업 과점 체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예대마진(대출·예금금리 격차) 축소, 통신 요금 선택권 확대 등을 통해 민생 부담을 경감할 필요성을 언급한 뒤 전격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가 이동통신 3사와 주요 시중은행, 대형 보험사, 증권사들을 잇달아 현장 조사하자 업계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구체적인 혐의를 잡아 메스를 대는 대신 업무 전반을 먼지 털기식으로 뒤져 뭐라도 잡아내려 하는 게 아니냐', '보여주기식으로 기업들을 압박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반면 정책 의지를 반영해 조사 대상을 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법 위반이 의심되면 조사로 진위를 가리는 것이 공정위 본연의 역할이란 의견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정책 부서와 조사 부서를 분리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는데, 이후 조사 성과를 내려는 의지가 더 강해졌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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