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우크라' 러 앞마당까지 전선 확대…전환점 맞이한 전쟁
진흙탕 굳고 서방 최신무기로 무장, 대반격 '최적의 조건' 형성
서방 지원 및 항전 동력 유지위해 작전 성공시켜야 하는 부담도
러, '용의 이빨' 방어선 구축하고 체첸군 투입하며 전열 재정비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러시아 침공군을 향해 대반격을 별러온 우크라이나가 드디어 영토 수복을 위한 대대적 공세에 나서는 모습이다.
겨울철 양측의 발목을 잡았던 우크라이나의 드넓은 진흙탕 뻘이 다시 단단하게 다져진데다, 서방에서 제공받은 장거리 미사일과 주력탱크 등으로 전력 보강까지 이뤄지며 만반의 준비 태세가 갖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우크라, 젤렌스키 '진군 시기 결정' 발언 닷새만에 전방위 공세
5일(현지시간)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우크라이나군은 전날부터 주요 전선에서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전날 동부 도네츠크주 여러 지점에서 전차 및 기계화보병 부대로 러시아군을 타격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루한스크를 포함, 전체 돈바스(도네츠크 및 루한스크) 지역에서 약 29회의 충돌이 있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러시아 크림반도는 우크라의 드론 공습을 받았고, 친우크라 성향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러시아 의용군단(RVC)' 및 '러시아자유군단'(FRL)은 러시아 서남부 본토 벨고로드를 급습했다.
이튿날에는 수도 모스크바 남서부에 위치한 칼루가 지역에 드론이 출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달 29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반격 진군 시기에 대한 결정이 이뤄졌다고 공언한 지 불과 닷새만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오전까지 대반격 개시 여부에 대해 언급을 아끼고 있지만, 전방위적인 공세 모드로 전환한 것을 고려하면 장기간 교착 상태에 머물던 전쟁이 일종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일 연설에서 지휘관과 장병 10여명을 일일이 호명하는 등 비장한 태도로 대반격 작전이 임박했음을 내비친 바 있다.
◇ 서방 주력탱크 효과 볼까…바흐무트서 러 병력 소모도 영향
먼저 최근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며 땅이 단단하게 굳은 것이 부대와 장비 이동을 수월하게 만들며 반격의 조건이 갖춰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3대 곡창지대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땅은 '체르노젬'이라 불리는 흑토로 뒤덮여있는데, 이 검은색 흙은 봄과 가을 진창으로 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전 초인 작년 2∼3월 러시아군의 전차 부대가 진흙탕에 빠지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함락되지 않은 것도 이 흑토의 덕이 컸다는 평가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예년보다 많은 비가 쏟아졌으나, 5월 들어서 들판이 단단히 굳었다고 지적했다.
서방이 약속한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속속 도착한 것도 공세에 최적인 상황을 조성해주는 요인 중 하나다.
연초 들어 유럽 각국은 영국의 챌린저, 독일의 레오파르트2 등 주력전차 제공을 결정했다. 주저하던 미국도 자국의 M1 에이브럼스 탱크를 보내기로 마음을 굳히며 우크라이나는 총 100대가 넘는 최신 탱크를 확보하게 됐다.
또 영국이 지난달 러시아가 2014년 강제합병한 '푸틴의 성지' 크림반도까지 타격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 '스톰 섀도'를 건넨 데 이어 미국과 서방은 현대식 전투기 F-16까지 지원할 방침을 밝혔다. 그사이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기지에서 우크라 부대 훈련도 진행됐다.
지난 수개월간 러시아 측이 상당한 규모의 병력을 잃은 것도 반격을 노리는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유리한 국면이다.
러시아 사설 용병단 '바그너 그룹'은 얼마 전 이번 전쟁의 최격전지 바흐무트에서 10개월간 이어진 공방전을 '완전 점령'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는데, 이곳에서만 10만명에 이르는 러시아군 장병이 숨지거나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날 우크라이나군은 바흐무트 근처로 부대가 진격 중이라고 밝히며 탈환을 위한 '2라운드' 재공세를 예고하는 등 상대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듯한 모습이다.
반격이 제대로 먹힐 경우 작년 가을 북동부 하르키우와 남부 헤르손 지역을 되찾았던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 서방 군사지원 지속 불확실…"다음 기회는 없다" 비장한 각오
다만 우크라이나로써는 이번 작전에서 반드시 성공을 거둬야 한다는 부담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서방은 1년 넘도록 일관되게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이에 따르는 예산 부담 등을 이유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러시아와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 재출마를 선언하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일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현재와 같이 지원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변화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며 "솔직히 말해 (미국) 정권 교체와 관련해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언급하는 등 이같은 고민의 일단을 내비쳤다.
우크라이나 내부 여론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아직까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평화협상 체결에 선을 그으며 영토 완전 수복을 외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견조하지만, 반격 성과가 신통치 않을 경우 더 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항전을 지속하겠다는 명분과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결국 안팎의 정치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이번 반격에 실패할 경우 다음 기회를 얻기가 좀처럼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반격에 매우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 전날 군 당국이 자국민을 향해 대반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작전상 정보와 관련해 침묵을 지켜달라고 촉구할 정도다.
◇ 참호 깊게 판 러시아…병력 충원하며 반격 대비에 총력전
러시아도 우크라이나가 대대적 공세를 준비하는 동안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해온 것으로 보인다.
전날 람잔 카디로프 체첸 자치공화국 수장은 "벨고로드에 쳐들어간 테러리스트들을 체첸부대의 군사력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걸 다시 알려주고 싶다"며 대규모 병력을 보내겠다고 천명했다.
바흐무트에서 전력을 소진한 '푸틴의 요리사'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바그너 용병단을 대체해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체첸 부대가 구원투수로 전면에 등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충병 자원 손실을 막기 위해 병역대상자 여권을 압수하는가 하면, 병역 시스템을 전자화해 개선하는 등 징집 움직임도 계속되고 중이다. 일각에서는 추가 동원령 발령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 2일 WSJ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방어선을 따라 깊은 참호를 파고 '용의 이빨'(Dragon's Teeth)로 불리는 콘크리트 장애물을 설치하는 등 전차 및 대규모 병력의 진격을 막아내기 위해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이 위성사진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일 "악의를 품은 자들이 러시아를 흔들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며 "그들이 어떤 경우에도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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