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ETN 상장 유지해준 NH투자증권·거래소 '황당 실수'
NH, 투자설명서에 조기청산 요건 약정 미포함…거래소도 못 걸러내
실시간 지표가치 1천원 미만 ETN은 조기청산·상장폐지 대상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급락하자 이를 2배로 추종하는 국내 상장지수증권(ETN)들이 줄줄이 조기 청산·상장 폐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NH투자증권의 ETN은 투자설명서에 조기 청산 요건 약정을 빠뜨려 상장이 유지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9개 증권사가 발행한 천연가스 레버리지 ETN 가운데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7개사가 발행한 상품이 모두 조기청산·상장폐지 절차를 완료했거나 절차를 앞두고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대신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천연가스 레버리지 ETN은 지난 2일 상장 폐지됐고, 나머지 5개사 ETN도 오는 7일 상장 폐지될 예정이다.
이들 종목은 모두 장 종료 시점 실시간 지표 가치(iIV)가 1천원 미만으로 떨어져 ETN 조기청산 사유가 발생했다.
국내 천연가스 레버리지 ETN은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선물의 일일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한다.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상승하면 일일 상승률의 2배로 수익이 나지만, 가격이 하락하면 손실도 2배로 커진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천연가스 최근월물 인도분 가격은 지난달 말부터 1MMBtu(열량 단위)당 2달러대 중반에서 초반으로 급락했다. 이에 레버리지 ETN의 지표가치도 연일 하락세를 보였다.
다만 삼성증권의 '레버리지 천연가스 선물 ETN B'는 실시간 지표가치가 1천원 이상을 유지해 조기청산 요건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러나 NH투자증권의 'QV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은 지난 2일 장 마감 당시 실시간 지표가치가 930원대로 떨어져 조기청산·상장폐지 사유를 충족하는데도 거래가 정지되지 않았다.
장 종료 시점에 실시간 지표가치가 1천원 미만인 경우 ETN을 조기 청산한다는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은 2020년 7월 말부터 시행됐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상장 당시 실무자가 투자설명서에 조기청산 약정 내용을 빠뜨렸다"며 "투자설명서에 조기청산 관련 문구를 넣어야 한다는 한국거래소의 가이드라인이 작년에 내려왔고 그 이후 처음 발행한 상품이 천연가스 레버리지 ETN이라 실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상품은 만기까지 거래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NH투자증권의 실수로 거래가 유지된 'QV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 만기는 2025년 10월이다.
다른 증권사 ETN 투자자들이 만기 전 조기청산으로 평가손실을 확정하게 된 데 반해 NH투자증권 ETN 투자자들은 만기 이전에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선 NH투자증권의 천연가스 레버리지 ETN의 상장이 유지되는 것은 투자자 보호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표가치 1천원 미만 ETN의 상장폐지 규정은 2020년 4월 '원유 ETN 사태' 당시 이른바 '동전주'로 전락한 ETN에 과도한 투기 수요가 몰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다.
당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이 급락하자 원유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급격히 늘어나 유동성 공급도 매수세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쏠림 현상으로 시장가격이 폭등하자 ETN 시장가치와 지표가치 간 괴리율이 100%에 가깝게 확대됐다. 괴리율이 1천%가 넘는 상품도 나왔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레버리지 원유 선물 ETN에 소비자경보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위험'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거래소 측은 "투자자는 투자설명서를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증권사 실수로 투자설명서에 조기청산 관련 내용이 빠졌다면 거래소가 조기청산과 상장 폐지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한 시장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규정을 설명서에 빠뜨린 증권사와 이를 상장 심사에서 걸러내지 못한 거래소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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