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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술탄 되나…'오스만 영광' 외치는 에르도안에 서방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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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술탄 되나…'오스만 영광' 외치는 에르도안에 서방 긴장
스트롱맨 성향 고수하며 중동·서방 안보동맹 내 세력확대
종신집권 발판 확보…"대외목표로 '글로벌 파워' 튀르키예 눈독"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각종 악재를 극복하고 재선에 성공, 사실상 종신집권의 토대를 닦은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두고 서방 세계가 긴장하는 모습이다.
옛 오스만 제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튀르크 민족주의로 무장한 그가 튀르키예를 다시 글로벌 강국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야심을 구체화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에르도안은 이번 선거운동 기간을 포함, 최근 몇 년간 과거 오스만 제국에 대한 기억을 거듭 상기시켰다"며 "그의 다음 초점은 세계 무대에서 튀르키예의 입지"라고 분석했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선 결선투표 결과가 발표된 다음날인 이날은 1천년 넘는 세월 존속해왔던 비잔틴, 즉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튀르키예의 전신 오스만에 함락된 날이다.
현재 이스탄불로 이름을 바꾼 콘스탄티노플은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이자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있는 도시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전날 당선 수락 연설을 통해 "내일 우리는 다시 한번 이스탄불을 정복할 것"이라며 "이번 선거는 역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WSJ은 그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과 이슬람 세계 지배력을 두고 경쟁해왔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중동에서 중앙아시아로 확장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과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등 분쟁에서 존재감을 보여왔다고 짚었다.
2003년 총리로 시작해 20년간 줄곧 튀르키예를 통치하며 반대파를 감옥에 가두고 사법·언론·중앙은행까지 장악하며 내부 정치환경을 단단히 다져온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릴 것이라는 시각이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역시 튀르키예에서 권위주의가 심화하며 민주주의가 퇴보할 것이라는 국내 반대진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과 국제무대 활약상 등이 그를 떠받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코는 "에르도안은 수락 연설에서 앞으로 자신의 '스트롱맨'(strongman·독재자) 스타일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겠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지적했다.
튀르키예 기반 독립 싱크탱크 앙카라 정책센터의 셀린 나시는 "에르도안은 국가기관에서 견제와 균형 역할을 제거했고, 1인 통치를 더욱 공고히 해나갈 것"이라며 그가 선거 때마다 보수·민족주의적 강경 노선을 취해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처럼 현대판 '술탄'(오스만 제국 황제)으로 우뚝 선 에르도안 대통령을 바라보는 서방의 불안감은 튀르키예 국내 상황에 그치지 않는다.

갈수록 동유럽 및 중동과 밀착하는 튀르키예가 중요 사안에 있어서 전통적인 서방세계로 분류되는 미국 및 서유럽 국가들과 결이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WSJ은 "서방국들은 1950년대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나토에 분열을 심고 있다고 우려한다"고 언급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국에 대한 최대 안보 위협이자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쿠르드노동자당(PKK) 관련자들이 스웨덴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스웨덴의 나토 가입 움직임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며 서유럽 안보를 지켜내고자 하는 나토 대다수 회원국 입장에서는 외연 확장을 가로막는 튀르키예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이 확정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이날 통화에서 미국산 F-16 도입에 대한 요청을 받았다며 이 사안이 스웨덴의 나토 가입과 연계돼 추진될 것임을 시사했다.
튀르키예 고위 외교관을 지낸 굴루 게제르는 "이 같은 교착 상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튀르키예가 유럽연합(EU)은 물론 미국과 관계에 다시 시동을 걸기 위한 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있어서 튀르키예가 취하고 있는 '중재자' 역할 역시 서방의 속내를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세계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산 식량을 나르는 러시아 쪽 항로를 복원하는 '흑해 곡물 협정' 연장에 중재 역할을 하며 주목받았다.
이 배경에는 작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서방이 부과한 경제제재에 튀르키예가 동참하지 않으며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최근 대선을 앞둔 튀르키예에 가스 대금 지급 기한을 연기해주는가 하면, 국영 원전기업을 튀르키예 국내 첫 원전 건설 사업에 참여시키는 등 에르도안 정권과 갈수록 밀착하고 있다.
앙카라 정책센터의 나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르도안에게 베푼 아량을 돌려받기를 분명히 바랄 것"이라며 "이는 튀르키예 외교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서방과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러시아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안정한 튀르키예 경제 상황도 변수다.
이날 튀르키예 리라화는 달러화 대비 환율이 20달러를 넘기며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또한 튀르키예는 주요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WSJ은 "튀르키예는 지난 수년간 리라화를 지탱하기 위해 수백억달러를 쏟아부었으나 국내 자산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국제무대를 향한 야심에 걸맞도록 국내 재정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에르도안의 최대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튀르키예는 과거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 비난으로 소원해졌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빌 살만 왕세자와 최근 해빙 무드를 조성하는 등 산유국들이 모인 중동 지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폴리티코는 "선거가 끝난 지금 에르도안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며 "나토 동맹국들은 그가 약속을 이행할지, 아니면 위협을 키워갈지 걱정스럽게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d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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