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마이크론 딜레마?…美 "어부지리 말길" vs 中 "공급망 수호"(종합)
中 G7 폐막일에 제재발표…미중대화 앞두고 지렛대 확보도 의식한 듯
'한국, 대체공급자 되지말라' 요구 가능성에 중국은 "결연히 반대"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이 21일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을 제재한 것은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한 '맞불' 조치로 여겨진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돼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중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에 대해 이 회사 제품 구매를 중지토록 했다. 지난 3월 31일 마이크론에 대한 심사 개시를 발표한 지 50여일 만에 내려진 조치였다.
특히 제재 발표 시기가 미국이 주도하는 주요 7개국(G7)이 중국에 대한 전방위 견제 내용을 담은 정상회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다음 날이자 G7 정상회의 폐막일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더해졌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때인 2019년 5월 행정명령으로 중국 통신장비 대기업 화웨이와 70개 계열사를 '수출통제명단'에 넣고, 이들 기업과 거래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등 화웨이의 공급망 마비를 겨냥한 고강도 제재를 가했다.
이 같은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은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16nm 내지 14nm 이하) ▲ 18nm 이하 D램 ▲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중국 기업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미국은 지난 1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일본, 네덜란드 측과 협의를 하면서 반도체 장비 대중국 수출 통제에 두 나라가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결국 일본과 네덜란드 모두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국내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마이크론을 제재함으로써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공급망에서 배제)이 미국 기업들에 부정적 영향으로 돌아오고 전 세계 반도체 산업망·공급망이 교란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와 더불어 지난 10∼11일 설리번 보좌관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오스트리아 빈 회동을 계기로 미중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자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도 노렸을 수 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한미관계에도 도전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나온 일부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중국이 마이크론 반도체 판매를 금지할 경우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가 중국에서 마이크론 대신 반도체 판매를 늘리지 못하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3강 체제를 형성한 마이크론은 작년 매출액 308억 달러(약 40조7천억원) 가운데 16% 이상인 52억 달러(약 6조8천700억원)를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올렸다. 중국 본토 매출액만 따지면 전체 매출의 10∼11%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미국이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어부지리를 얻지 못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 외신 보도의 취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의 이번 발표로 중국의 마이크론 판매 금지는 부분적으로 현실이 됐다.
이에 따라 외신 보도대로 미국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늘리지 말 것을 실제로 요청할 경우 한국 정부와 재계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될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대중국 반도체 판매 확대를 거부하더라도 빠르게 부상하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나 '선전킹뱅크테크놀로지' 같은 중국 업체들이 그 몫을 충당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즉 한국 기업들이 마이크론의 대중국 수출 몫을 가져가길 포기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의 대중국 지렛대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에서 활동하는 반도체 투자 전문가 이병덕 SL캐피털 이사는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중국 측이 마이크론 제품을 쓰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낸드플래시의 경우 부분적으로나마 중국업체 제품으로 대체 가능하지만 D램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D램의 경우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 구입량을 더 늘리는 것을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방안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으로선 가뜩이나 반도체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확대를 자제해달라는 요구를 해올 경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어 보인다.
중국은 22일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 때 미국이 한국업체의 '마이크론 어부지리'를 저지하려 할 가능성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힌 뒤 "유관 국가 정부와 기업이 중국과 함께 다자무역 시스템,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며 한국 정부와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 요구에 응하지 않기를 기대했다.
동맹국인 미국과, 여전히 한국 반도체의 중요 시장인 중국 측 요구 사이에서 한국 정부와 업계가 쉽지 않은 선택을 요구받을 수 있다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한편 21일 발표된 중국의 제재가 마이크론의 주 고객인 민간 전자기기 업계는 일단 피해 갔다는 점에서 마이크론이 입을 타격이 당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됐다.
월가 투자은행(IB) 제프리스는 마이크론의 주요 중국 고객이 규제 적용 대상인 정보기술(IT) 인프라 공급 업계가 아니라 스마트폰·PC 등 전자기기 제조업계인 점을 고려하면 마이크론이 받을 타격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또 중국에 들어가는 마이크론 제품의 상당 부분은 비중국계 기업이 사 간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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