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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교황 평화안 거부…"침략자와 희생자가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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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교황 평화안 거부…"침략자와 희생자가 같습니까"
바티칸 '기계적 중립'에 우크라 "푸틴 규탄해달라" 촉구
러시아 철군·영토 회복·전범 처벌 등 기존입장 고수
"중재 필요없다. 승리가 필수, 우리 평화공식 동참해달라"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우크라이나 편에 서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교황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중립적 중재자 역할을 맡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 직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저지르는 범죄를 규탄해달라고 요청했다"며 "피해자와 침략자는 절대로 같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우리의 평화공식이 정의로운 평화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유일한 알고리즘이라는 점을 얘기했다"며 "우리 평화공식의 실행에 동참해줄 것을 제안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점령한 상태에서 전쟁이 종식되는 방식의 타협을 극도로 경계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군 철수, 우크라이나 영토 회복, 전쟁 범죄 기소 등 항목을 포함한 10개 평화 공식을 제시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이 같은 입장을 고려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안에 대한 단호한 거부로 관측된다.
현시점에 중립적 입장에서 타협을 거론하는 교황의 평화안은 우크라이나가 내세우고 있는 종전 선결조건에 위배되는 게 사실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황과 만난 뒤 이탈리아 방송에 나와 "교황님을 존경하면서 말씀을 올리자면 우리는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중재를 받을 수 없다"며 더 구체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전쟁터에서 승리가 필수이며 승리가 다가오고 있다며 확고한 악의를 지니고 있는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이후 교황을 접견한 건 이날이 처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요청대로 러시아 규탄에 적극 나서줄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날 교황청은 성명을 내고 교황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했다고 발표했지만 교황이 종전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줄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비밀 평화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때문에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관련 대화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으나 교황청 관계자는 이번 만남과 평화 임무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외교적 중립성을 자산으로 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같은 날 각국 외교관과 만남에서도 군사, 정치, 상업 등 문제에 대한 바티칸의 중립성을 강조했다.
그런 틀에서 교황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종전을 중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으나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대한 명시적 비난은 자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진이 이번 전쟁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나토의 확장 저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이던 까닭에 이 발언을 두고 서방에서 논란이 일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교황 접견을 앞두고 상당한 기대를 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이탈리아에 도착한 뒤 트위터에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다가가는 중요한 방문!"이라고 적었다.
미 인디애나주 노트르담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인 대니얼 필포트는 WSJ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립 표방을 미국과 거리를 두는 남미 가톨릭의 성향에서 찾았다.
필포트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서 제3세계 관점을 더 많이 갖고 있다"면서 "교황이 자신을 나토에 있는 군종 신부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hanju@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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