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극우 이스라엘 장관 피하려고 외교행사 취소
"우리 가치와 모순"…벤-그비르 장관 "EU가 재갈 물려" 반발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유럽연합(EU)이 이스라엘에서 외교 행사를 열기로 했다가 극우 성향의 이스라엘 장관이 참석 의사를 밝히자 행사를 취소했다.
8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EU는 9일 이스라엘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유럽의 날' 기념 행사에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 참석을 강행하기로 하자 이 행사를 취소했다.
벤-그비르 장관은 이스라엘 연정 내 대표적인 극우성향 정치인으로, 이번 행사에 이스라엘 정부를 대표해 참석할 계획이었다.
EU와 주요 회원국들이 극우 성향이 아닌 다른 장관을 이스라엘 정부 대표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벤-그비르 장관은 자신이 참석할 것을 고집했다.
그는 이 행사에서 연설을 통해 "지하드(이슬람 성전)와 테러리즘에 대한 단결된 투쟁을 요구하고 EU 회원국들이 이스라엘군(IDF)과 이스라엘 시민에 대항하는 계획에 자금을 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몇몇 EU 회원국 대표들은 불참하겠다며 반발했고, 결국 이스라엘 주재 EU 대사들이 회의 끝에 행사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스라엘 내 EU 대표부는 짧은 성명을 내고 9일 '유럽의 날'을 평소처럼 기념하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문화 행사는 텔아비브에서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에 따르면 EU 회원국 중 헝가리와 폴란드 등 친이스라엘 국가 두 곳만 행사 취소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EU 측은 EU의 가치와 모순되는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벤-그비르 장관은 EU가 "비외교적으로 재갈을 물렸다"며 반발했다.
장관 측은 "민주주의와 다문화주의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국제기구가 비외교적 재갈 물리기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정부와 영웅적인 이스라엘군, 이스라엘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영광이자 특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이스라엘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이스라엘 초강경 우파 연정이 들어선 뒤 주이스라엘 EU 국가 대사들은 벤-그비르 장관과 역시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과의 만남을 거절해왔다.
이번 행사 취소는 이스라엘이 지난 7일 요르단 서안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있는 학교를 임의로 철거한 데 대해 EU가 "경악했다"며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데 이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 건물이 허가받지 않고 불법으로 지어졌다는 철거 사유를 들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나 이들을 돕는 지원단체들은 서안 지구에서 건축 허가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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